엘리엇 사태로 본 삼성과 도요타의 '품격' 차이
입력 15.06.23 07:00|수정 15.06.23 07:00
[Invest Column]
  • [06월18일 11:0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삼성' 때문에 시끄럽다. 사회적으로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가 이슈다.

    삼성과 엘리엇의 대립 구도는 일찌감치 형성됐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 국부 유출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언급되며 삼성의 편을 드는 쪽이 있는가 하면 기업가치 훼손에 대응하는 '행동하는 주주'가 부각되며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는 쪽도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이유를 담은 별도의 웹사이트까지 공개했다. 그동안 기업 경영진이나 기관투자가들을 타깃 삼았다면, 웹사이트를 통해선 일반 투자자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며 장기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차치하고서라도 투자자를 대하는 삼성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그룹 안팎에서 공감하는 분위기다.

    삼성은 앞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추진했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까지 제지를 받으며 트라우마는 깊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일련의 합병 추진이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오너 일가의 승계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보고 있다. 각 회사는 합병 추진 배경과 사업적 시너지 기대감을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투자자들은 물론 그룹 임직원들도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도 "삼성이 성장성에 한계를 보이면서 회사를 바라보는 외국 투자자들의 시선은 점점 냉담해졌고, 배당 확대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반면 컨퍼런스콜 등에서 보여지는 삼성의 태도는 여전히 이에 무관심해 시장 환경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구조조정을 관장하는 미래전략실이 주주 가치 제고라는 측면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글로벌 기업 도요타자동차는 이런 점에서 삼성과 비교가 된다.

    도요타는 지난 4월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5000억엔, 우리 돈으로 4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전환사채(CB) 발행 계획을 밝혔다. 이른바 AA형 주식으로 불린 이 신주는 5년간 거래할 수 없고 5년이 지난 후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도요타에 발행가에 되팔 수 있다. 일반 CB와 다른 점은 거래가 불가능한 5년 동안 의결권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AA형은 도요타가 처음으로 생산했던 승용차 이름에서 따왔다. 도요타는 이번 CB 발행을 통해 조달된 자금을 연료전지자동차(FCV) 개발을 포함한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의 외국인 지분 비율은 30%, 개인 투자자 비율은 약 10%다. 도요타는 개인 투자자 비중을 늘리고 이들의 의견을 경영에 적극 반영해 기업 지배 구조 향상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반대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세계 최대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AA 신주는 도요타가 침묵하는 주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행하려는 것이라며 신주 발행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ISS 입장에선 침묵하는 주주는 곧 회사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주주가 늘어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일반 투자자까지 감안하는 신중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주주들의 동의에 힘입어 도요타의 5000억엔 규모 신주 발행 안건은 주주총회에서 무사히 통과됐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신주가 주주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할 것"이라며 "이는 도요타가 주주들과 5년 이상 기업 가치를 구축해가기를 원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1937년 창업 이후 회사가 제안한 안건이 주총에서 부결된 사례가 한 건도 없는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는 회사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설명하고 또 반대의견을 받아들이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현재 삼성의 (오너를 제외한)주주 인식 한계를 보여준다. 도요타와 비교하자면 소통의 품격 차이가 느껴진다. 글로벌 1등 기업은 단순히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파는 곳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제품의 물건을 파는 것은 물론, 그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과거 경제성장기의 패러다임 속에서 눈과 귀를 닫고 있기만 한다면 삼성의 '제일주의'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