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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24일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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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이 났지만 소프트뱅크는 10억달러, 우리돈 1조1000억원을 쿠팡에 투자했다. 한때는 소셜커머스 기업로 분류됐고, 이제는 모바일커머스로 불리는 3사 가운데 가장 적자를 많이 낸 곳(2014년 기준)이 가장 큰 투자를 받았다. 소프트뱅크는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소프트뱅크의 쿠팡 투자는 국내 투자시장에 사건으로 기록됐다. 상징적인 숫자에 맞춰 거액이 해외에서 들어온다면, 과연 국내 투자자들은 어떻게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의 가치를 평가해야하고 투자해야할 지 고민을 던졌다. 쿠팡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손익계산서를 봤다면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의아할 뿐이다. 쿠팡의 가치가 5조5000억원으로 평가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쿠팡에 가려지긴 했지만 티켓몬스터도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이하 KKR)을 비롯해 앵커에쿼티파트터스, 싱가포르투자청(GIC),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Temasek), 캐나다연금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벤처투자업계의 큰 손인 알토스벤처스의 한킴 대표는 "경영진의 비전과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인적 구성 등을 보면 투자할 곳인지 아닌 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적자 기업인 모바일커머스사에 투자하는 이유라고도 했다. 과거의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는 투자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지만 과거의 결과가 미래를 말해주지 못하듯, 이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알토스벤처스도 쿠팡의 주주다.
소프트뱅크, 쿠팡에 10억달러 투자
영업 손실에도 '미래 가치' 평가
티몬도 KKR 등 대규모 투자 유치실제 엔젤 또는 벤처 투자는 무모한 듯 했지만, 이미 국내시장에서도 상당한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해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는 이제 진부해졌다. 그런 기업을 사고 파는 과정은 기업의 현재 현금흐름을 사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사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실체를 통해 창출할 부가가치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다음카카오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기업인수의 흐름이 그렇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록앤롤(김기사), 패스(Path), 탱그램연구소를 잇따라 인수했다. 당장 수익이 얼마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같은 생계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SK그룹은 미국의 모바일커머스 플랫폼인 숍킥을 인수했으며 체리야닷컴, 비바클럽, 모닝365 등을 사들였다. 소비자들이나 사용자들은 SK그룹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실패 원인으로 매번 대기업의 경직된 DNA가 꼽힌다. 그 뒤에는 손익 중심의 사업 진행과 성과 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들을 취재하며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수익모델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 였다. 돌아오는 답은 "당장의 수익이 왜 중요한가"였다.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과 기반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은 수익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야할 시점이다"였다. 쿠팡이나 티몬과 같은 모바일커머스를 롯데그룹이나 신세계그룹이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대기업, 상장 회사들이 쿠팡이나 티몬처럼 사업을 벌인다면 ‘연간 수백억원의 손실'에 대한 기업 내부와 투자자들의 불만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모바일커머스 시장에서 대형 유통기업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수조원 모바일 결제 시장에 수백조 매출 기업들이 뛰어드는 이유'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ICT기업들이 모바일 결제 시장에 적극 진입하고 있지만 결제 사업에서 수익 창출을 우선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수수료보다는 결제 서비스를 통해 주력사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차별화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크다"고 분석했다. 결제서비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결제수수료 외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까지 확보하는 사업자가 결제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가진 제품과 플랫폼, 고객을 기반으로 한 확장 가능성(부가가치창출)까지 생각하며 투자 검토를 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손익계산서가 아닌 앞으로의 손익계산서와 현금창출력 등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현재 실적을 보면 흔들림은 있지만 다른 대기업이 비하면 탄탄하다. 하지만 연구개발에 투자 규모가 줄거나 방향이 틀렸다면 미래의 손익계산서와 현금창출력은 지금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국내 대기업·금융사도 흐름 바꿔야
손익·성과만 쫓아다니다 성적 저조
돈 벌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더 중요
앞으로의 손익과 현금창출력 따져야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면, 금융회사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흥미로운 지적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란 예상이다. 전통적인 자산 가치와 현재 사업을 계속한다는 보수적인 기준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창출 기회를 오히려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당장의 손익과 부채비율, 차입금 규모 등 회사를 숫자로만 판단하는 은행의 현재 구조조정 방식은 앞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신수종·신성장 사업을 하겠다며 IT에 뛰어들지만 당장의 손익을 먼저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의 얘기다. 은행들에게 핀테크 기업 지원에 나설 것을 정부가 종용하고 있지만 한계가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시장의 M&A와 산업 구조조정의 흐름은 현재의 손익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는 측면이 강하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산업이 휘청이고 있지만 대형 M&A가 잇따르고 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넘고, 미래에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이 추진하다 중단한 SK루브리컨츠 매각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성장성이 낮은 SK루브리컨츠를 매각한 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신규 투자에 집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게 IB업계의 시각이다. 기업공개(IPO)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자들도 당장의 손익 계산서보다 미래 그림(성장스토리)을 요구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Bobcat)홀딩스에 대한 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투자자 모집 중이다. 투자자들의 반응이 미적지근이다. 한 대형 공제회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잠재 투자자들에게 나중에 손실이 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며 "밥캣의 성장성, 비전 등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아 투자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손익계산서를 버릴 수는 없다. 버려서도 안 된다. 결국 스타트업도 벤처도, 중견기업도 10~20년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 성장에 대한 결실은 손익계산서로 종합된다. 투자가 멈췄을 때 수익이 나야 계속 기업이 될 수 있고 판단하는 잣대는 손익계산서이다. 기업인수 거래에서 기업의 비전과 성장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가격’인 것과 같다. 다만, 우버(Uber)가 보편화돼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을 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익계산서는 접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