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기업 신용도 도미노 강등…삼성도, 포스코도 떨어졌다
입력 15.07.07 07:00|수정 15.07.07 07:00
[Invest Chosun]
정유·철강·조선 등 수출 기업 신용도 대규모 하락
대외환경 변화 속 과잉투자 원인
신용도 하락…하반기 기업자금 조달에 직·간접 영향
신평사, 하반기엔 재무구조 개선으로 확보한 자금 사용처 모니터링
  • [07월05일 09: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국내 주요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유례없는 신용도 하락이 나타났다."

    국내 한 신용평가사 평가위원의 말이다. 올해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에서 정유·화학·철강·조선·건설 등 국내 수출 효자 산업의 신용등급이 우후죽순으로 떨어졌다.

    국내 간판 기업인 삼성·포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반기엔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국내 국고채·회사채 금리 상승이 예상된다. 자금조달에 나서는 기업들엔 신용도 하락 속 금리상승이라는 '빨간불'이 켜졌다.

    ◇ 국내 간판 수출 기업 신용도 대규모 하락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정기 신용평가가 마무리됐다. 전체적으로 등급 상향은 줄어들고, 하향 업체 수는 크게 늘었다. 한국신용평가는 "등급 상향업체는 9건, 하향업체는 46건으로 전년동기 상향 12건, 하향 28건에 비해 하향조정의 방향성이 심화했다"라고 말했다.

  • 올해 초부터 신용평가사들은 대규모 신용등급 하향을 예고했다. 연초 각 신용평가사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포럼을 열고, 산업별 이슈가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신용조정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렸다. 정기평가가 마무리된 지금 이들의 예고는 현실화했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 업황 부진에 시달린 조선·철강·건설업체들은 등급 하향을 피할 수 없었다. 조선업의 경우 빅3 조선사의 신용등급이 모두 하향 조정됐다. 해양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나타난 대규모 손실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철강업에선 포스코가 국내 최고 신용등급 'AAA' 지위를 잃었다. 구조적인 영업 수익성 저하가 신용도에 반영된 결과다. 해외건설사업 부실로 '어닝쇼크'를 겪은 건설업도 신용도 하락의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그룹의 건설 부문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을 필두로 포스코건설, SK건설, GS건설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실적 상승세를 타던 정유·석화업체는 저유가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유·석유화학 업체는 중국 경제성장과 일본 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 신용도가 개선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급격한 유가하락으로 실적이 급감하면서 신용도마저 하락했다.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을 필두로 나머지 정유 3사는 지난해 정기평가 이후 모두 신용도가 떨어졌다.

    기업들의 신용도 하락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컸다. 한국신용평가의 등급하향 업체 수 대비 상향업체를 비교한 업-다운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80%대보다 낮은 20% 수준까지 하락했다. 등급 하향 업체 수는 증가했지만 상향 업체 수는 나타나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다.

    ◇ 대외환경 변화 속 과거의 과잉 설비투자 발목 잡아

    신용도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과잉 설비투자와 대외여건 변화가 꼽힌다.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과감한 설비투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부진 속 최근 중국마저 성장률이 정체되면서 공급과잉에 따른 실적부진이란 결과를 낳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후발국가의 제조업 성장으로 인한 글로벌 경쟁강화도 기업들의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외부적 요인 외에도 KT E&S, 포스코플랜텍 사태가 신용평가사의 칼날을 날카롭게 했다. 모기업의 지원 여부를 바탕으로 높은 신용도를 부여받았던 KT E&S와 포스코플랜텍의 갑작스런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신청은 신용평가사의 평가 방식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모기업의 재무가 탄탄하더라도 계열사의 실적이 부진하면 이를 신용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신용평가사에 팽배해졌다.

  • 하반기에는 신용도 하락에 따른 직·간접적인 영향이 나타날 전망이다. 직접적으론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이 예상된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월 이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만큼, 하반기엔 국내 기준금리를 낮춘다고 할지라도 국채나 회사채의 금리 상승을 피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은행 문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 신용도를 기준으로 대출 여부를 심사하는 은행으로선 더욱 까다롭게 기업대출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바젤Ⅲ 도입에 맞춰 자본건전성 강화에 나서는 은행으로선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출해주기 어려운 환경이다.

    넘치는 유동성의 해외유출도 거론된다. 보험사를 중심으로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투자처는 중국의 우량 기업이 발행하는 달러화 채권이다. 매력적인 금리와 안정성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한 크레딧 연구원은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채권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보험사의 수조원대 투자금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 하반기 모니터링 이슈…재무구조 개선으로 마련한 자금의 '사용처'

    올해 신용평가사의 정기평가가 마무리되면서 당분간은 기업들의 급격한 신용도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부정적 등급이 붙은 대다수 기업들의 신용도가 대부분 하락해 추가적인 신용등급 조정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신용평가사의 관심사는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으로 마련한 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과거 과잉투자로 재무부담을 떠안은 사례가 다시금 반복되는지 유심히 모니터링한다는 계획이다.

    피경원 NICE신용평가 실장은 "등급이 떨어진 기업들의 상당수가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단기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앞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