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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53일간에 걸친 대결이 종지부를 찍었다. 승리하긴 했지만 이번 합병 결의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보여준 모습은 '삼성답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엘리엇의 공격적인 수를 읽지 못한데다,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실패 사례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합병이 끝났지만 엘리엇과의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도 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가능성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한 지난해부터 언급됐지만, 실현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룹 지분율이 14%에 그치고 외국인 지분율은 30%를 넘어가는 지분 구조상 주주총회에서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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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5월26일, 동시에 이사회를 열어 양사의 합병을 결의했다. 주요 기관 주주들도 발표 이후에 상황을 인지할만큼 전격적인 발표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식매수청구권 과다 행사로 합병을 철회한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의 사례를 의식한 듯 주식매수청구를 통한 합병계약 취소의 하한선을 '양사 합계 1조50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은 주주총회에선 합병 승인을 받았다. 주식매수청구권이 과다 청구된 까닭은 두 회사의 주가가 합병을 앞두고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이 '주식매수청구'에만 신경쓰고 '표결'엔 신경을 덜 쓴게 아니겠느냐는 평가를 내놨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합병 결의 전 삼성은 주가 하락에 따른 주식매수청구에만 대비하면 된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며 "표결로 인한 부결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엘리엇에 대한 판단과 대응도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주가에 이의를 제기한 게 지난 2월, 그리고 합병 가능성에 대해 문의한 게 4월의 일이다. 상대 회사에 적대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삼성물산의 경영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합병을 발표한 직후 곧바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 주식을 노린 '현물배당' 및 '주주총회를 통한 중간배당'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내놨다. 엘리엇이 확보한 7.12%는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삼성물산 지분이 많은 삼성SDI(7.39%)에 필적하는 지분율이었다.
엘리엇이 본격적으로 합병 반대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하자 KCC가 백기사로 나섰다. 삼성물산은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명부폐쇄일 직전 KCC에 자사주 5.7%를 매각했다. 삼성물산과 KCC는 "KCC가 자사주 매입을 제의했다"고 설명했다. KCC의 최초 장내 지분 매입 시점(6월8일) 등을 고려하면 합병 결의 전에 교감이 있었던 거래는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엘리엇은 이에 반발해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모두 이를 기각하며 삼성물산의 합병 추진은 법적으로 인정 받았다. 다만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와 글라스루이스는 물론, 한국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 등 주주를 대변하는 의결권 자문업체들이 모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며 합병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국민연금과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 그리고 삼성의 호소에 부응한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으며 제일모직과의 합병 안건은 17일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삼성과 엘리엇의 다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엘리엇은 지난 16일 주주총회결의금지 및 자사주매각금지 가처분 관련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주주총회가 진행된 상황에서 큰 의미는 없지만 본안소송을 대비한 차원이라는 평가다.
또 엘리엇은 이달 초 삼성물산의 계열 주주인 삼성화재와 삼성SDI의 지분 1%를 확보했다. 주주대표소송과 이사 위법행위 유지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지분율이다.
[Invest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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