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매각, 답은 정해졌지만 난해한 방정식
입력 15.09.02 07:00|수정 15.09.03 09:41
KB금융, 대우증권 잠재력 틔워줄 새 주인 ‘0순위’
産銀-KB 다른 눈높이, 결국 조직 논리로 풀어야
정성적 평가 강조했지만…외국계 가격 높을 시 변수
  • 대우증권 매각이 본격화하며 시장의 시선은 KB금융지주로 모이고 있다. 국내 대표 증권사 매각이라는 점, 인수 의지와 여력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할 때 다른 적격자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모범 답안은 나온 셈이지만 문제 해결까지는 고려할 요소가 많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드러내놓고 KB금융만 좇을 수 없고, KB금융은 무리한 인수를 피해야 한다. 서로의 눈높이도 맞춰야 한다. 자본력을 갖춘 외국 금융회사의 입질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 ‘産銀 굴레’ 벗는 대우증권, 새주인 0순위는 KB금융

    산업은행은 대우그룹 해체 후 지난 2000년부터 대우증권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가치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함께 매물로 나온 산은캐피탈이 산업은행 우산 아래서 성장한 반면, 대우증권에 있어선 굴레로 작용했다. 시너지효과는 크지 않았고, 생동감은 떨어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우증권과의 IB 부문 통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산업은행이 IB 부문을 강화했고, 이는 대우증권을 견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는 “진작에 팔았어야 했는데 산업은행이 너무 오래 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인수후보로는 KB금융지주가 첫 손에 꼽힌다. 다른 금융지주와 견줘도 자회사 라인업이 탄탄하게 구축돼 있지만 증권사가 약한 점이 아쉽다. 현재로선 KB금융이 원하는 수준의 증권사는 대우증권이 유일하다. 대우증권 인수 시 국내 1위 증권사로 탈바꿈 하게 된다.

  • 증권사 관계자는 “KB금융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경우 복합 점포를 활용해 리테일 판매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KB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은 주력 사업이 달라 무난히 통합하고 구조조정 부담도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에서 NH농협금융지주에 밀린 터라 대우증권 인수를 바라보는 시장의 기대감도 남다르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생명보험업 역마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아비바생명보험까지 인수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며 “아비바생명만 아니었다면 1000억원을 더 써서라도 인수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KB금융의 1분기 말 기준 이중레버리지비율은 101.51%다.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 인수로 비율이 그보다 높아졌지만 신한금융(121.6%), 하나금융(125.63%), NH농협금융(117.04%) 등 경쟁사에 비해 관리가 잘 이뤄졌다. 지난해 자회사로부터 5000억원 이상의 배당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인수여력도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다.

    ◇ 産銀 vs KB금융, 경제논리 보단 조직논리

    올해 초 1만원 이하로 떨어졌던 대우증권의 주가는 한때 1만7950원까지 치솟았다. 시가 대비 산업은행 보유지분(43%)의 가치는 2조5000억원을 넘었다.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예상 거래 규모는 3조원에 달했다.

    대우증권의 최근 주가는 하락세다. 27일 종가 기준 산업은행 보유지분의 가치는 약 1조7771억원이고, 순자산가치에 대입하면 약 1조8310억원이다. 장부가(1조7758억원)와 큰 차이가 없다. 30%의 프리미엄을 붙여도 2조3000억원 수준이다.

    산업은행은 ‘올해 재무제표 반영이 어렵다’며 대우조선해양 부실과 선을 그었지만 최근 주가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자회사로 뒀음에도 가치 개선을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터라 최대한의 프리미엄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올 들어 증권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과거 대비 높아지기도 했다.

    KB금융은 입장은 다르다. 3조원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며 짐짓 엄살을 부려왔지만 본격적으로 나설 환경이 조성됐다. 가치평가 기준도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과 같은 대형 증권사 M&A에 맞춰질 전망이다. 프리미엄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 결국 조직간 정치 논리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책은행과 관치를 벗어나기 어려운 금융지주간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좋은 가격에 매각해야 하는 산업은행과 1조원짜리 우리투자증권을 놓친 KB금융의 접점은 결국 정치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우증권 매각은 주가보다는 매각자와 인수자간 협상을 통한 프리미엄 산정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KB금융 이사회가 변수다. 올해 이사회가 새로 조직되며 아직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과거엔 주요 사내 현안과 M&A에서 보수적이고 깐깐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가격에 따라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 외국계 후보가 ‘복병’…우리銀 전철 밟을 우려도

    KB금융을 제외하면 국내 유력 후보는 오리무중이다. 신한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이 거론되지만 매각 성사를 위한 조연에 그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한금융은 사업 다각화 의지가 크지 않고 한국투자증권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과의 합병 승인을 받은 직후라 대규모 M&A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오히려 외국계 자본이 복병이다. 시틱(CITIC), 중신증권, 안방보험 등 중국계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로 ‘호혜주의’ 원칙도 상당 부분 희석됐다. 최근 캐피탈사 및 저축은행, 안방보험 등 금융회사 M&A에 빈번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동양증권(유안타증권)과 현대증권도 외국계 자본이 인수했다.

    산업은행 역시 외국계 자본에 매각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자본시장 발전’이라는 단서를 달아 정성적 요소를 강조해 KB금융에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M&A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본에 시장 영향력이 크지 않는 생명보험사를 열어 준 것과 국내 대표 증권사를 내어주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정부 입장에선 외국계 자본에 국내 1위 증권사인 대우증권을 매각하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자본이 KB금융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써내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가격 차가 큼에도 KB금융 손을 들어준다면 공정성, 차별 시비와 함께 해당 국가와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산업은행과 정부 모두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난 우리은행 민영화는 교보생명과 안방보험의 2파전 구도였지만 정부는 시중은행을 중국 자본에 내주길 원치 않았다. 교보생명의 불참으로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재현될 경우 대우증권 매각도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