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 산은캐피탈, 매각 쉽지 않다
입력 15.09.02 07:00|수정 15.09.02 11:59
기업금융 특화됐지만 매력 요소로 보기 어려워
産銀 후광 효과 사라져…신용도·수익성 하락 우려
장부가·PBR 1배 기준선…매각 추진 명분에 그칠 수도
  • 산업은행이 정부 방침에 따라 산은캐피탈을 매물로 내놨지만 새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신전문금융 업황이 좋지 않고, 사업영역도 기업금융에 치우쳐 있어 경기 변동에 취약할 수 있다.

    산업은행의 품을 떠나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도 절대 가격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 장부가 6000억…PBR 1배 가능할까

    산업은행은 지난 24일 금융자회사 매각 방안을 발표하며 산은캐피탈의 장부가격이 5973억원이라고 밝혔다. 매각 희망 가격은 밝히지 않았으나 대우증권 매각 성공을 위해 ‘덩치가 큰’ 산은캐피탈의 매각 공고 시기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했다.

    장부가는 이번 매각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에 초점이 모아져 있으나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손실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효과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순자산가치 역시 고려대상이다. 캐피탈사 가치산정(밸류에이션)에 참여했던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금융업은 결국 순자산가치가 금액 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수익률과 손실률 등 요소를 감안해 미래 현금흐름을 예상해야겠지만 매각자 입장에선 결국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는 맞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말 현재 산은캐피탈의 순자산 역시 6000억원 수준이다.

  • 최근 주요 캐피탈사 M&A에서도 PBR 1은 상징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다. KT캐피탈의 경우 매각이 중단되는 등 차질을 빚다 J.C플라워가 가격을 높이며 PBR 1배 수준에 거래가 이뤄졌다. 아주캐피탈은 시장 평가보다 크게 높은 PBR 1배를 고집하다 무산되기도 했다. SC캐피탈 역시 오랜 협상 끝에 1배 가까운 금액에 거래를 마쳤다. 씨티캐피탈은 배당을 통해 순자산을 덜어냈고 PBR도 높아졌다.

    IB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6000억원을 들여 캐피탈사를 인수할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높게 반영하지 않는 한 PBR 1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타 캐피탈사와 달리 기업금융 분야에 자산이 몰려있는 점도 부담 요소로 꼽았다.

    ◇ 기업금융 특화됐지만 매력은 ‘글쎄’

    산은캐피탈은 2010년 이전까지 산업은행과 연계한 고수익여신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선박리스 및 대출의 비중이 총 여신의 40%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들 여신의 부실로 건전성이 저하된 후엔 부실채권의 상각 및 회수 작업에 집중했다.

    무게 중심은 일반기업 여신부문으로 옮겨갔고, 실적은 개선됐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공격적인 영업으로 자산 규모도 성장세다.

    산은캐피탈이 기업금융 부문을 강화한 데는 산업은행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통합 산업은행 출범 전 정책금융공사와 함께 중소기업 여신을 주로 취급했었고, 현재는 그 중요도가 더 높아진 상황이다. 대출채권의 경우 90%가 기업대출이다.

  • 기업금융 비중이 높은 점이 특징일 수는 있으나 강점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캐피탈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기 때문에 자금만 있다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은행과 저축은행 사이에서 차별화도 쉽지 않다. 산은캐피탈은 캐피탈사의 주요 먹거리로 떠오른 할부금융은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야 상대적으로 진입이 용이한 수입차 오토리스 부문 확장에 힘쓰는 정도다. 자체적으로 전국 영업망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금융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할 수는 있지만 다른 캐피탈사와 차별화된 매력 요소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부실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으나 경제 상황에 따라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 사라지는 産銀 우산…수익성 악화 부담도 타격

    산은캐피탈은 산업은행의 브랜드 가치를 공유하며 성장해 왔다. 자금 집행 대상에 대한 정보 공유는 물론, 산업은행의 위험 관리 체계에 따라 건전성을 관리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그간 수 천억원에 달하는 증자에 참여했고, 산은캐피탈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인수하는 등 재무적으로도 지원해 왔다.

    매각 완료 시 산은캐피탈은 산업은행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떠나게 된다. 정보의 축소는 물론 기업금융 중심의 정체성에도 혼란이 올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수익성 감소 여부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현재 산은캐피탈의 등급(AA-)에는 산업은행의 지원가능성이 반영돼 있다”며 “산업은행의 품을 떠날 경우 등급 하락 및 조달 금리 상승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조달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JT캐피탈(전 SC캐피탈)의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A3(인수 전 A2)로 평가하기도 했다.

    산은캐피탈은 영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지난해 지출한 사채 이자만 900억원에 육박한다. 신용등급이 한 계단만 떨어져도 많게는 수 백억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기대 수익 감소를 우려하는 인수후보들은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려를 피할 수 있는 인수후보는 국내 금융지주사 정도다. 그러나 KB금융지주는 이미 우리캐피탈(KT캐피탈)을 인수했고, 신한·하나·NH 역시 캐피탈사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금융 중심인 산은캐피탈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도 크지 않다.

    외국계 참여 여부도 불투명하다. J트러스트나 러시앤캐시, J.C플라워즈 등 캐피탈사에 관심을 보여왔던 외국계 금융사들은 보수적인 성격인 데다 기업금융보다는 소비자금융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탓에 은행 내부에서도 매각 가능성에 회의를 품는 목소리가 나온다. 굳이 장부가 이하로 팔아서 특혜 시비와 배임 논란, 국회 감사 등 부담을 질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인수 후보가 없거나 매각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매각을 추진했다는 명분만 얻고 매각을 중단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