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기감 커진 화학업계, 농업생명과학 주목
입력 15.09.22 07:00|수정 15.09.22 09:32
LG화학 등 동부팜한농 인수에 ‘출사표'
글로벌 시장규모 120조원…작물보호제·종자 등 매년 6% 성장
높은 진입장벽·대규모 투자가 부담…“자본확보 방안 필요한 사업”
  • 동부팜한농 인수 예비입찰에 화학업계 대표주자인 LG화학이 명함을 내밀었다. 갈수록 범용 석유화학제품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지자 신사업인 농업생명과학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일찍이 이 영역에 뛰어든 글로벌 화학사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화학기업들의 성장이 둔화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이어졌고, ‘제2 내수시장’인 중국이 주요화학제품의 자급률을 높이면서 수요가 줄어든 게 컸다. 여기에 북미 셰일가스나 중국 석탄화학(CTO) 같은 값싼 공급원료(Feedstock)의 등장이 위협요인으로 떠오른 상태다. 더 이상 기존 석유화학제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 글로벌 시장규모 120조원…듀폰 등 글로벌社 20여년전 뛰어들어

    각 기업들을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는데 한창이다. LG화학·한화케미칼·롯데케미칼 등 주요 화학기업들은 해외공장 신설이나 해외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저렴한 원료를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동시에 소재·전자재료 등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동부팜한농이 매물로 나오자 주요 화학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동부팜한농은 비료·작물보호제·종자·동물약품 등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최대 농자재기업이다. 농업생명과학에 특화된 사업포트폴리오를 가졌다. 국내 화학기업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영역이다. 회사는 매년 6000억~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이익도 꾸준히 내고 있다.

  • 증권업계 관계자는 “화학기업들이 범용제품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지면서 신사업을 찾던 차였다”라며 “동부팜한농의 사업들을 살펴보며 현 상황을 타개할만한 전략을 구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농업생명과학 시장규모는 120조원 정도다. 이 중 작물보호제와 종자시장 규모는 각각 50조원가량 된다. 두 영역 모두 매년 약 6%씩 성장하고 있다.

    해외 대형 화학기업들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관심을 보이며 농업생명과학에 뛰어들었다.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이슈에 발맞춰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겠다는 것이 1차적 이유였다. 북미·유럽에선 1980년대부터 노후 화학공장의 오염물질 유출, 화학제품의 유해함 등이 이슈가 되면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기업의 사업전략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기업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릴 신성장동력의 필요성이 커졌다. 마침 식물유전자 관련 연구성과들이 나오면서 유전자변형 종자 사업이 새로운 시장이 열던 차였다.

    대표적인 기업이 듀폰과 바이엘이다. 듀폰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사업구조 재편을 단행, 핵심사업을 농업생명과학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최대 종자기업인 파이오니어 하이브레드(Pioneer Hi-Bred)를 인수하고, 제약사업과 코팅사업을 매각했다. 기능성화학사업도 올해 분리 상장했다. 반대로 지속적인 연구개발 강화 및 인수합병을 통해 식품·영양·산업용효소사업을 확장했다. 1994년 10% 수준이던 농업생명과학 사업의 매출비중은 지난해 43%로 늘었다.

  • 종합화학기업 바이엘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사업구조를 새로 만들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회사는 제약(Healthcare)·농업생명과학(Crop Science)·소재과학(Material Science) 3개의 독립자회사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바이엘은 내년 소재과학사업을 분리 상장해 완전한 생명과학기업으로 거듭날 방침이다. 이밖에 바스프와 다우케미칼도 농업생명과학의 매출비중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이 사업을 회사의 한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 진입장벽 높고 대규모 투자 필요…자본확보 방안 준비해야

    농업생명과학은 새로운 구조의 화합물을 개발·합성·분리·정제 등의 과정을 거쳐 생산한다는 점에서 정밀화학과 유사한 것이 많다. 유통망이나 마케팅 대상, 최종 소비자도 비슷해 화학기업이 해당사업을 하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이 크다. 또한 식량부족·자원고갈·환경오염 등 인류 공통의 문제와 연관돼 있기에 수요가 꾸준한 영역이기도 하다.

    다만 진입장벽이 높다. 개발에서부터 화학·생물학·의학·정밀기계 등이 융합된 기술력이 필요하다. 지역별로 심사·등록·허가절차도 엄격하고 특허문제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시장이 이미 과점화돼 있어 브랜드 인지도 자체를 높이는 것도 큰 과제다. 현재 몬산토·신젠타·바이엘·듀폰·바스프·다우케미칼 등 빅6가 글로벌 작물보호제 시장의 80%, 종자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기업을 인수하지 않는 한 국내 화학기업이 해외 농업생명과학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이라며 “동부팜한농을 인수해도 국내에선 안정적인 이익을 내겠지만 당장 해당사업을 확 키우진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부담요인이다. R&D부터 상품화, 마케팅, 유통망 확보 등 사업 초기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크다. 기술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대형 화학기업들도 기존 사업을 매각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왔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선 장기간 대규모 자본력 확보방안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며 “그 외에도 경쟁사와의 제휴, 전문 벤처기업과의 협력, 일부 밸류체인 사업의 상장 등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