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카드 '유암코'…"비현실적인 빈수레 정책"
입력 15.10.26 07:00|수정 15.10.27 17:08
은행들, 금융당국 유암코 기대 키우기에 우려 목소리
대기업 구조조정 손대기, 현실적으로 무리
주주은행과 이해상충 불가피…주식ㆍ채권 매입가 논란
여전히 채권은행 중심 구조조정 벗어나기 어려워

"아마추어 신인 뽑아서 프로 만들겠다는 발상"
"실효성 적은데, 정책 실패 부메랑 우려"
  • 금융당국이 시장중심의 '좀비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연합자산관리(유암코) 기능 확대개편 안을 내놓았으나, 시장에선 당장 '발등의 불'도 끄기 어려운 빈수레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암코의 한정된 자본과 경험 부족, 일부 은행들이 주주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당국이 기대하는 정책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2일 금융위원회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유암코의 기초재원을 3조~4조원대로 확대하고 기업재무안정 사모펀드(PEF)를 활용해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주채권은행의 역할도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을 비롯한 시중 금융회사의 반응은 차갑다. 금융위가 내놓은 밑그림이 비현실적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유암코가 대기업 부실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굳이 유암코를 한계기업 핵심정책으로 발표하는 당국의 '고집'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장의 실망감이 정책 실패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비현실적인 재원마련 방안…당장 은행들과 이해상충 예상

    금융위원회는 유암코의 현재 기초 재원이 3.25조원이지만 이를 활용해 장기적으로 12조~28조원까지 확대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자본금 1.25조원과 대출약정2조원, 부실채권(NPL)사업 자본 0.5조원 등을 기초로, 채권은행 등이 투자자(LP)로 참여한 펀드를 만든다. 이때 모아야 할 추가자금이 약 4조~10조원. 그래서 최대 8.4조~14조원의 펀드들이 만들어지면 이 돈으로 액면가의 절반(50%)에 구조조정 채권이나 주식을 산다는 그림이다.

    '28조원대 구조조정'이란 수식어도 그래서 비롯됐다.

    하지만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또한 적어도 4~5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란 평가다.

    일단 펀드 구성과 투자자 모집 과정에서 발생한다. 유암코가 조성할 펀드에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외부자금을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유암코 펀드의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자금모집의 유인이 전혀 없다.

    채권은행들이 재투자하면 된다고 하지만, 은행들은 그러잖아도 바젤Ⅲ 규제 강화를 앞두고 자본규제에 신경쓰는 상황이다. 은행들이 '수익이 날지, 자칫 손실이 커질지 모를 펀드에 수천억씩 투입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더 늘리는 상황. 결국 금융위가 그리는 수준의 펀드 조성 자체가 어렵다. 자연히 유암코의 활동여력도 크게 줄어든다.

    게다가 주식 및 채권 매입 가격도 난관에 빠질 상황이다. 당장 은행과 '이해상충' (Conflict of interests) 문제가 발생한다.

    구조조정 기업 주식이나 채권 액면가가 100억원인데 이를 50% 가격에 넘길 경우. 향후 회수가능금액이 높아지면 은행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유암코에 양보한 것이 된다. 은행 선에서 살릴 수 있는 기업을 굳이 싼 값에 유암코에 넘길 가능성이 없다. 자칫 '배임'문제가 불거진다.

    그렇다고 은행이 해당 주식이나 채권을 회수가능하다고 보는 금액보다 비싸게 넘기면? 이제는 유암코 펀드의 수익성 문제가 불거진다.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야 하는 판국에 원금손실이 고스란히 예상된다. 어느쪽이 됐든 논란이 예상된다.

    시장 관계자는 "유암코와 채권은행 간 가격 조정이 최대 난관이 될 것"이라며 "채권 등 가격협상이 파행으로 가는 등 정착하기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유암코 기대감 키우기에 우려 목소리도

    이런 한계로 인해 유암코가 대기업은 손대지 못하고, 중견기업 위주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초기 대상은 자산 1000억~2000억원가량의 중견기업 구조조정에 집중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금융위는 당장 실탄이 4조원 수준이라고 해도, 리스크헷지라는 포트폴리오 효과를 누리기 위해 중소기업 부실을 인수하는 PEF를 여러 개 운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란 밑그림을 그렸다.

    결국 정책당국이 '좀비기업 청산'이라고 거대하게 선언했지만, 그만한 정책효과가 나오기 어려워진다.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결국 중소기업 적극적으로 구조조정 하고, 대기업 살리는 형국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일례로 최근 부실사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한 곳만 하더라도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이 조단위에 달한다. 유암코식 구조조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손병두 금융정책국장 역시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부실 채권은 '발등의 불'이라며 새로운 NPL 매각 방식은 적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암코의 '중재자' 또는 '구조조정 지휘자'로서 역할론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많다.

    금융위는 이번 정책을 놓고 앞으로 '산업은행-채권은행-유암코'라는 삼각구도의 구조조정 정책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이 당분간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은행 역시 유암코의 구조조정 및 관리 능력에 불신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부실기업 및 지분을 인수하고 회생하는 데 인력은 물론 트랙레코드가 쌓이지 않았다"며 "유암코에 돈을 추가투자 한다는데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진행하면 레버리지비율이 올라간다"며 "불확실성이 있는 사업에 은행들이 쉽게 추가적으로 대출을 결정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유암코가 현행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당분간 주채권기관의 역할을 맡기도 어렵다. 금융위가 주채권기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인 선수를 뽑아서, 프로로 양성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이라며 "현재 진행되는 한계기업 등 구조조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은행권에선 금융당국의 소통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암코의 운영방식 개선안으로 국내 구조조정의 틀이 바뀐다고 '과대 포장'한다는 인상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가 왜 유암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유암코의 대형사 구조조정은 먼 얘기로 4-5년 후라면 얘기가 가능하지만 지금 당장 구조조정 틀 전환은 힘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