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쌍용양회 채권단, '유리한 판결문'까지 꽁꽁 숨긴 까닭은
입력 15.10.28 17:27|수정 15.10.28 18:12
[쌍용양회 매각⑤]
태평양시멘트측 경영권·우선매수권, 가처분 판결문선 모두 부정
채권단에 유리한 정황·법적인 매각 근거 모두 명시돼
'비밀유지협약 깼다' 빌미 주지 않기 위한 포석인 듯
  • "기록상 확인되는 태평양시멘트와 산업은행 사이에 이뤄진 매각협상 경위에 비춰볼 때, 태평양시멘트의 우선매수청구권은 소극적인 협의 태도 등을 이유로 이를 실효시킨다는 매각 협의회의 결의에 따라 적법하게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쌍용양회 채권금융기관들이 준 동의서는 그 내용 자체로 태평양시멘트의 쌍용양회에 대한 경영권을 보장해주기로 약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내린 쌍용양회 관련 가처분 판결엔 채권단의 입장이 대부분 반영됐다. 유리한 정황과 매각의 법적 근거가 모두 명시됐지만, 채권단은 이 내용을 비공개하고 언급 자체를 꺼렸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태평양시멘트에 '비밀유지협약을 깼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 인베스트조선이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의뢰해 입수한 쌍용양회 임시주주총회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 판결문에 따르면, 채권단이 2005년에 태평양시멘트에 부여한 우선매수권의 부여 기간은 당초 1년 시한부였다. 다만 채권단 의결로 실효될 때까지는 매 6개월간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채권단은 약정서상 결의를 통해 즉시 우선매수권을 실효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태평양시멘트가 ▲매각협상에 있어 신의성실원칙을 위배하거나 ▲최대주주 지위를 잃거나 ▲경영부실이 일어나는 경우 등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된 매각협상에서 태평양시멘트가 시간을 끄는 등 신의성실원칙을 위배했다고 판단했고, 이에 근거해 지난 6월10일 우선매수권 실효를 결의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판결문에 따르면 채권단은 태평양시멘트와 '쌍용양회의 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자'로도 인정했다. 다만 이는 '경영권을 보장해준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이런 합의만으로 태평양시멘트에 경영권을 보장해주기로 약정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공식적인 주주간 약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태평양시멘트에 경영권을 보장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채권단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태평양시멘트는 약정서 등에 따라 법적으로 쌍용양회에 대한 경영권과 우선매수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문은 태평양시멘트 주장의 근거를 대부분 부정한 셈이다. 태평양시멘트가 판결 후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채권단은) 우선매수권 교섭과 협의에 응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신의성실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소명의 차원으로 풀이된다.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을 받아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채권단이 함구한 까닭은 비밀유지협약 때문으로 분석된다. 채권단은 우선매수권 협상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하는 협약을 태평양시멘트와 맺고 있다.

    판결문을 공개할경우 필연적으로 우선매수권 관련 사항이 외부에 알려진다. 이는 협약을 위반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태평양시멘트의 의사에 반해 매각을 추진하는 채권단 입장에선 협약 위반이라는 틈을 내줄 필요가 없다.

    채권단 관계자는 "내부 법적 검토와 가처분 판결 결과에 따라 매각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더이상 태평양시멘트에 휘둘리지 않고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