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는 체력고갈인데, 정부는 '헛다리'…벼랑 끝 한국 해운업계
입력 15.11.03 07:00|수정 15.11.09 15:42
①정부 해운업 구조조정안 "뒷북인데다 방향성도 모호"
해운업계, 자구노력에만 체력소모
한진해운·현대상선, 얼라이언스 유지하느라 진땀
  • [편집자주] 구조조정의 파도가 조선업계를 넘어 이제 해운업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급조되고 실효성 논란이 큰 설익은 정책들만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늑장대처, 낮은 업종 이해도, 방향성 상실과 미숙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베스트조선은 국내 해운업계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 적절한 대처 방안에 대해 진단한다. 

  • 정부가 조선업계에 이어 해운업계 구조조정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착수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현대상선 매각' 등의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해운업계와 자본시장의 반응은 극히 부정적이다.

    일단 정부가 이미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고 해운산업 재편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향성도 없다. 그 와중에 해운사들이 어렵다고 하니 '둘이 합쳐라' 라는 단순한 시그널만 주면서 접근방식마저 피상적인 차원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반면 선사들의 자구노력은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해운업을 얼마나 살릴 것이냐"라는 묵은 과제에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차원의 구조조정보다는 당장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얼라이언스 내 위상이라도 지켜낼 수 있게 지원해 달라는 오랜 요구도 반복되고 있다.

    ◇ 엇나간 해운사 투자전략…정부지원·자구안으로 이자 갚기 '급급'

    국내 해운사들의 위기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전후로 본격화했다.

    이들은 해운업이 호황기인 2007년까지 비싼 용선료가 맺어진 선박들을 대거 확보했다. 금융위기의 발발과 동시에 물동량 감소가 이어졌고 선박 공급 과잉현상이 빚어졌다. 자연히 영업이익이 급감했고 이는 곧 재무부담 가중으로 이어졌다. "해운사들의 시황예측 연구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선박투자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지 않았다"는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 선박투자 실패의 후폭풍을 버텨낼 '체력'도 부족했다. 해운사들의 재무건전성은 다른 산업의 대기업들보다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정부와 금융권의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세계 1위를 구가했던 국내 조선업과의 협업과 연계를 통한 리스크 헷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일본의 경우 자국 선사들이 자국 조선소에 일감을 주는 탄탄한 구조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해운업 전문가는 "일본 또한 유럽권처럼 정부-금융권-해운업계 간의 삼각편대 구조가 튼튼하다"라며 "금융권과도 호흡이 잘 맞아 선박투자촉진회사 등 각종 제도가 잘 운용됐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선사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형화'를 통해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국내선사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0년, 효율성이 높은 대형선박(에코쉽)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왔다. 평상시보다 20%나 저렴한 가격에 대형선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머스크는 이를 통해 하위 업체들과 격차를 벌렸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투자자금은 물론 차입금 상환도 여의치 않았다. 이 시기를 활용할 상황이 아니었다.

    정부가 선사들을 돕고자 나선 것은 한참 뒤인 2013년쯤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부활을 시작으로 올해 해양보증보험(해양보증기구의 축소판)·에코쉽펀드 설립 등 몇 가지 지원책을 가동했다. 하지만 지원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고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조차도 기업에 '철저한' 자구책을 요구한 후 호흡기만 달아 준 수준이라는 평가다.

    금융기관들도 해운업계에 대한 시각은 냉정했다. 선사 지원에 앞장은커녕, 소극적인 자세만 유지하게 됐다. 해운사들은 해운사대로 당장을 버티기 위한 '여러 자구안' 들을 제출했고 실행에 옮겼다. 이조차 '1~2년만 버틸 수 있는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강했고, 업황 회복이 담보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컸다.

    ◇"합치는 게 능사?"....국내 해운업 도외시에 글로벌 선사만 독주

    한참이 지나서야 정부는 해운업 구조조정 안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조선사 구조조정 과정 가운데서 "해운업도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가장 먼저 언급된 방안이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이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양사를 비롯한 해운업계는 손사래를 쳤다. 해운산업에 관심이 적던 정부가 갑작스레 선사를 합치겠다고 나선 것에 당혹스러워했다.

    정부가 중국·일본 등이 줄줄이 자국 선사를 합치려는 움직임에 급하게 편승해 모양새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지난 30년간 지켜낸 얼라이언스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며 "두 선사가 합쳐진다고 해도 지금의 해운시황에선 얼라이언스 내의 지배력이 두 배로 강화될 순 없다"고 전했다. 게다가 두 선사는 '항로'까지 거의 유사해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거의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현대상선을 매각하는 작업도 재무적 투자자(FI) 지분을 고려하면 쉬운 과정이 아닐 것이란 의견이다.

    상대적으로 해외선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으로 가격경쟁력을 갖추며 체력을 길렀다. 머스크는 올해도 대규모 선박을 연이어 발주했다.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선사이다 보니 국내 조선사들도 수출입은행 등의 지원을 받아 앞다퉈 머스크 수주에 나서고 있다.

  • 결국 해운업 개편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개선안과 시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운업계는 "정부의 정치 논리로 조선사 '지원 쏠림현상'이 지속되는 동안 해운사들은 자연히 도외시됐다"고 판단한다. 해운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취약업종 관계자들 모임에 가면 해운업을 홀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라며 "다른 선진국에서는 먹거리는 제공하는 입장의 해운사가 우월한 지위를 가진 데 반해 국내에선 해운사들이 조선사에 밀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운업계는 선박은행(Tonnage bank) 설립과 같은 중장기적인 정책은커녕 지금 할 수있는 대책이라도 재시동을 걸어달라는 바람을 내비치고 있다. 우선 해양보증보험 등의 기구를 통해 지원 규모를 조금씩 늘리자는 것이 하나의 대책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무모한 경쟁으로 적자를 자초한 조선사에는 수조원의 지원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해운사에는 고작 수백억원을 지원하는 것조차 머뭇거린다"면서 "선사들을 실질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지원금이 늘어나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