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리즘'만 여실히 드러난 해운업 구조조정
입력 15.11.18 07:30|수정 15.11.18 07:30
  • 연말이 가까워지며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의지가 한층 강해졌다. 해운업이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혜안을 내놓는 곳도 없고, 책임을 지려는 이도 없다. 구조조정의 방향성은 오리무중이다.

    국내 해운업의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 본격화했다. 경기침체와 세계 물동량 급감에 선박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예측 못한 국내 해운사들은 호황기 시절 맺은 비싼 용선료 계약 때문에 실적 저하와 재무부담 가중에 직면했다. 시황예측에도 실패했고, 선박투자에 대한 노하우(know-how)도 없었다.

    같은 시간, 글로벌 해운사들은 자의든 타의든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세계 1위 머스크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도 초대형 에코쉽 발주를 늘려 시장 지위를 높였다. 세계 2위인 스위스 MSC와 ‘2M’이라는 동맹체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얼라이언스 간의 경쟁은 점점 격화됐다. 그러나 한국의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은 어떤 존재감도 보이지 못했다.

    개별 해운사들에만 책임을 전가시키기에는 억울한 감이 있다. 해운업의 구조적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책과 금융이라는 ‘노(櫓)’가 뒷받침돼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노’들의 관심은 오로지 조선업에만 향해 있다.

    한국 조선업은 눈에 보이는 고용효과, 그리고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이 있다. 게다가 내년 4월에는 총선도 있어 지역 표심 확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2008년 이후 해운업에 지원된 자금은 1조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조선업에 지원된 금액은 10배인 1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산업별 외화획득액(2014년말 기준)을 보면 선박(382억달러)과 해운업(346억달러)의 차이는 40억달러도 안된다.

    해운업 위기가 부각되자 “한 나라에 2개의 국적선사가 필요하냐”는 목소리가 나왔고 기껏 나온 카드가 강제매각과 합병이다. 정부가 이런 식이니 건전성 관리로 제 코가 석자인 금융권도 해운업 살리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에서는 “알아서 자구안 만들고 지키라고 해서 총력을 다했더니 이제 와서 둘을 하나로 합치라고 압박이나 한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유럽과 중국의 선사들은 달랐다. 장기불황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부터 정부와 국책은행, 시중은행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 이들 선사는 각국 조선사들의 빗발치는 발주 요청에 힘입어 시장의 ‘갑(甲)’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국내 대형 선사들은 국내 조선사들에조차 외면을 받는다. 세계 1위 수준의 조선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 선두권의 해운사를 만들 수 없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일단 연관 산업을 관장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조선업은 산업통상자원부, 해운업은 해양수산부 담당이다.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설이 뉴스화했을 때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가 각기 다른 의견들을 내놓는 혼선을 야기했다.

    이웃 일본만해도 국토교통성에서 조선과 해운업을 함께 관할한다. 자국 선사가 자국 조선사에 발주하는 조선과 해운업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 한 때 한국에 뒤쳐졌던 일본 조선사들의 경쟁력은 이제 한국을 능가한지 오래다.

    한때 우리 정부도 해운업 경쟁력 강화에 관심이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후보는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부산지역 7대 공약에 넣었다. 조선사들에 수출입은행이 있듯이, 해운전문금융기관 설립은 해운업계의 숙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선박금융공사는 해양보증기구로, 이어 그보다 더 낮은 단계인 해양보증보험으로 격하됐다.

    지난 12일 해양수산부 부활 후 첫 내부 출신의 장관이 임명됐다. "한국 해운업의 재도약을 이뤄내겠다"는 공언도 나왔다. 하지만 얼마나 힘이 실릴지는 미지수다.

    국내 해운업계를 취재하면서 너나 할 것 없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목격했다. 장기 비전과 플랜은 없고, 구조적인 문제해결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단기성과에만 치중한 근시안적인 선언만 난무했다. 해운업계의 미래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됐다. 이젠 10년 후에도 한국의 배들이 세계의 바다 위에 떠있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 과정이 “어느 누구 하나 잘못 한게 없다”고 한 세월호 사건과 너무나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