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주총…관료출신 사외이사 영입 '여전'
입력 16.03.17 07:05|수정 16.03.17 07:05
'연공서열 중시' 관직·금융권
관료출신 사외이사 영향력 커
경영자 견제 기능 미미
법적장치·시장기능 강화돼야
  •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주요기업의 '관료출신 사외이사 영입전'이 시작됐다. 올해도 기업들과 손을 잡은 거물급 관료출신이 눈에 띄고 있다. 사외이사가 경영자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은 채 정부·금융기관의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요기업이 발표한 올해 사외이사 후보진에는 고위 관료였던 경제·금융통이 즐비하다. 지난 11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된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롯데쇼핑의 사외이사로도 활동할 예정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선임될 계획이다.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도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직을 제안받았지만 최종 수락하진 않았다.

  • 이러한 움직임은 고위 퇴직 관료의 산하·연관기관 재취업을 금지하는 기류와 맞닿아있다. 세월호 사태 이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으로 인해 고위 관료의 민간기업 재취업 기준까지 강화되고 있다. 그만큼 퇴직 관료의 재취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민감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관료출신 사외이사를 지속적으로 영입하는데에는 관료출신 사외이사가 기업과 정부·금융기관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는 대부분 대관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관직·금융권에서 정책기관 수장을 맡았던 사외이사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꽤 크다"라며 "특히 재무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하는 과제가 우선순위인 기업에 이들의 존재감은 더 크다"고 밝혔다.

    올해 신규 선임되는 관료출신 사외이사를 바라보는 집중도는 예년보다 높다. 다수의 기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금융기관을 상대하는 경우가 잦아진 탓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외이사들이 본원의 역할을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경영진에 반기를 드는 관료출신 사외이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의 대관업무는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사외이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경영진·지배주주 견제다. 사외이사 개개인의 전문성·독립성·다양성은 사외이사진 전체의 영향력과 더해져 경영진의 독선적인 행위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사외이사 제도는 선진국과 달리 외환위기 이후 강제 도입되면서 본질적인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공직 출신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경우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외이사는 자신들의 연임을 위해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다. 금감원이 공개하는 이사회 안건 찬성 여부 공시를 살펴보면 이사회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를 찾긴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회 사무국이 부결된 만한 안건은 사전에 미리 필터링을 해버린다"라며 "특정 안건에 반대표가 나오면 사외이사진이 토론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사무국이 준비를 잘못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 이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실제 행하는 업무에 걸맞는 보수를 받는지에 대한 비판이 늘 제기되어 왔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지난해 기준 사외이사 5명의 보수는 총 4억3800만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8800만원의 보수가 지급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이 경영진과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쉽게 반기를 들지 않을 인물들로 사외이사진을 채우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사외이사가 기업의 가치 제고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비용만 유발하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선 사외이사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재규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사외이사직을 부차적인 직이 아닌 본업으로 여겨 본연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라며 "사외이사 각각의 전문성이 더 발휘되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법적 보완장치와 시장 견제기능도 강화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외이사는 재직 당시 발생한 횡령이나 각종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A 회사의 사외이사가 재직 당시 해당 회사에 분식회계 등이 일어나도 임기 만료 후 B 회사의 사외이사로 쉽게 재취업하곤 한다.

    시장 투자자들도 사외이사진을 엄격히 관찰해야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해외투자자·소액주주들은 사외이사의 시장 평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라며 "사외이사진에 대한 뚜렷한 평가 잣대가 없는 만큼 시장이 스스로 기준을 형성해야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