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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상장(IPO)이 어렵다구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요즘 뜬다는 '바이오'에 전념한다는 자회사 A를 하나 세우세요. 그 다음에 '외국회사가 A사 주식 상당량을 나중에 사갈지 모른다'라고 공시한 후 자회사(종속기업) 리스트에서 빼는 겁니다. 그러면 연결재무제표에서 제외되고 귀사가 보유한 A주식을 지분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A사는 바이오에 투자한 회사니 당장은 적자가 나도 수년뒤에 수천억원의 이익을 벌어들일거라서 A사 지분의 값어치는 최소 5조원은 된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면 A사 주식에 대한 지분법 평가로 귀사에 수조원의 기타포괄순익이 잡힙니다. 그럼 귀사는 당장 영업적자가 나더라도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하는 겁니다.
매출액이 적어서 안된다구요? 걱정마세요. 이번에 거래소가 상장 규정도 크게 완화했습니다. 자본금만 넉넉하면 적자가 나도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가능합니다. 무리한 거래 아니냐구요? 대한민국 No.1 삼성그룹도 지금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기업에 자문한 사례는 아니다. 지나친 단순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미래라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한번쯤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에서 '삼성' 이 아닌, 다른 회사라면 이런 식의 상장이 가능할까."
◇"10년뒤 수천억원 벌거니까요, 5조짜리 회사가 맞아요"
우선 국제회계기준(IFRS) 채택으로 보편화되어 투자자들의 눈을 밝혀줬던 연결재무제표가 한 순간에 힘을 잃었다.
인베스트조선이 수차례 제기한대로 바이오로직스는 수년간 보유해 온 자회사 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어느날 갑자기 '시가로 4.8조원짜리다"라고 선언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인베스트조선 2016.4.29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마술'로 만든 2兆 순익은 상장 대비용?) (인베스트조선 2016.5.3 '삼성' 이름값만 믿는 바이오로직스…'가치평가 어쩌나')
그렇다고 이 회사에 무슨 대박이 난 것도 아니다. 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2월부터 합자회사로 설립해 현재도 지분 91.2%를 보유, 최대주주로 지배해 온 회사다. 그 상태에서 "같이 회사를 설립한 외국기업(바이오젠)이 나중에 지분을 49.9%까지 늘릴 수 있는 조항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조항 때문에 우리가 지배하는 회사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네요"란 논리를 들이댔다.
이 선언 하나로 '종속기업'(Subsidiary)이었던 회사가 '관계기업'(Affiliate)로 탈바꿈했다. 곧바로 바이오로직스-바이오에피스를 하나의 몸체로 보던 연결재무제표가 사라지고 개별재무제표가 도입됐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양호하다. 공개된 숫자만 놓고보면 바이오에피스는 순자산 3000억원에, 수천억원 영업손실을 내는 아직 초기단계의 회사다. 이를 연결재무제표에 포함시켜본들 대차대조표(B/S)상에서 자산과 부채를 반영하고, 손익계산서(IS)에서 내부거래 등을 제외한 기타포괄손익을 반영하는 정도다. 굳이 따지면 순자산만 조금 불리는 것 이외에는 모회사의 가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회사를 연결재무제표에서 빼버리고 해당 주식을 '지분법적용투자주식'으로 간주해 공정가치를 매긴다고 경천동지할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현금흐름할인모형(DCF)의 가열찬(?) 활용으로 순자산 몇천억원에, 수익도 못내는 회사의 주식 값어치는 무려 4조8000억원짜리로 탈바꿈했다.
비상장사의 현금흐름할인법(DCF)은 M&A나 IPO에서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논란의 소지가 가장 많은 방식으로 꼽힌다. 몇몇 전제조건을 세워놓고, 나중에 회사가 벌어들일 현금을 추정하는 방식이어서다. 업황의 등락이 크지 않고, 비슷한 대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회사들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해야만 이 모형의 신빙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설립된지 얼마되지도 않은 회사인데다, 업종도 신사업이고, 비교할만한 유사기업(Peer Group)도 없다면 도대체 10년 뒤 이 회사가 얼마를 벌어들일지 추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동안 이런 DCF 활용으로 벌어진 해프닝도 적지 않다. 일례로 2008~2009년 동부그룹이 합금철 관련 자회사 동부메탈을 프랑스 에라메트 혹은 산업은행 PEF에 매각하겠다며 예상한 지분가치가 1조원이었다. 이 가격이 적절하다고 평가받고자 회계법인이 고용, DCF로 가치평가를 내렸다. 이때 재미있는 가정법이 많이 달렸는데 그 중 하나가 "달러/원 환율이 10년 넘게 1000원으로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조항이다. 이런 식이니 인수 측에서는 당연히 펄펄 뛰었다. 찾아보면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한 PEF 관계자는 "글로벌 PE들이 투자자(LP)들에게 포트폴리오 회사의 값어치가 높다고 자랑하고 싶을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 바로 비상장회사의 미래현금흐름 추정"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국내 IPO시장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거래소가 배포한 상장심사 가이드북은 DCF 모형에 대해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의 검증가능성이 낮아 국내 IPO평가 방법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못함"('KRX 상장심사 가이드북' 40페이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에피스 지분 91%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면서 이 모형을 적용했다. 그러면서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 24.1 % 에서 57.4 %가 될 것이라 가정했다. 게다가 영업수익 성장률은 최저 -1%, 최대 105.3%로 설정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푼도 못벌 수도 있고, 100% 넘게 벌수도 있고..." 거의 의미 없는 가정치다.
이런 회계처리에 대해 회사 측에 공식입장을 물어봐도 뾰족한 답변이 없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말고는 연결재무제표 해소에 대한 다른 이유가 없다" , " 회계법인 자문결과 문제가 없다고 의견을 받았다" , " (DCF 가치평가에 대해서는) 따로 더 내놓을 입장이 없으며 역시 문제 없다고 본다". 이 정도다.
당연히 드는 생각이 있다. 삼성그룹도 이런 기법을 쓰는데 다른 기업이라고 이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우리도 자회사를 관계기업으로 바꾸고 개별재무제표 도입할게요"라고 선언하고는 수조원짜리 지분이라고 하는거다. '삼성'이 아니라는 차이 말고는 없다.
◇"매출액 적어요? 이익 안나요? 그래도 한국에선 상장 가능합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처럼 발생한 거래소의 규제완화도 너무나 시의적절(?)했다.
예전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면 반드시 매출액이 1000억원이 넘거나 이익액이 30억원이 넘었어야 했다. 매출이 크지도 않고, 적자까지 내는 기업을 상장시켰다가는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올해부터 신규조항이 두 가지 추가됐다. 그 중 하나가 "시가총액 6000억원 이상이고 자기자본 2000억원 이상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다. 이 조건만 충족되면 매출액이 적어도, 영업적자가 나도 상관없다.
여기에 부합하는 대상이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작년 매출액 910억원에 그치는 이 회사는 새로운 상장규정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면 자회사 주식이 5조원이 아닌, 10조원짜리라고 해도 코스피 상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삼성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감사할(?) 조항이다.
새 조항은 금융위원회의 '2단계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라면 적자를 좀 보더라도 상장을 시켜줘야 증시에 돈도 돌고.. 대강 이런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갖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충분히 성장성이 높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느냐", "이익이 나지 않는 회사의 상장을 이렇게 쉽게 해주면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하느냐"등등. 적어도 상식 선에서는 그렇다. 그러잖아도 '묻지마 투자' 열풍에 대한 우려와 악몽이 여전한데.
혹시.. 당장은 적자를 내고 있지만 향후 성장잠재력이 큰 기업을 상장시켜 주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라도 되는가 싶어 해외 주요 증권거래소들의 상장조건을 뒤져봤다. 그러나 딱히 비슷한 조항을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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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으로, 뉴욕주식거래소(NYSE)에 상장하려면 "최근 3개연도에 얼마 이상의 수익이 있어야 한다"라는 의무조항을 지켜야 한다. 일본거래소(JPX)도 "최근 2년간 연결손익계산서 기준으로 5억엔 이상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이익요건이 달려있다. 상하이 주식거래소(A Share)도 "최근 회계연도 말 누적손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규정했다. 싱가포르와 타이완도 대동소이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가증권시장'과 비슷한 메인보드에서는 이익관련 규정이 거의 대부분 필수조항에 해당됐다.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숫자만 놓고보면 뉴욕이나 일본, 상해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상장요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적어도 그 사이 각 국 거래소에서 이익요건 규정을 삭제하지 않은 한 말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거래소만 매출 1000억도 안되고 여전히 영업적자가 쌓여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라도 '시가총액 10조원 운운'하며 거래소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재했던 2010년 5월. 삼성그룹이 내세운 5대 신수종 사업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5가지 였다. 그 사이 태양전지는 업황 자체가 기복을 겪었고, 자동차용 전지 시장은 "테슬라에 파나소닉(PANASONIC) 말고도 누가 앞으로 연료전지를 공급하느냐"는 시장으로 바뀌어버렸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LED는 불황이고, 벤처1호 메디슨을 사들였던 삼성전자 의료기기 사업부는 되레 재매각가능성이 거론된다.
남은 분야는 바이오 제약 하나. 그만큼 바이오 사업에 거는 기대감은 막중해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시험대로 보는 시각들이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런 부담감은 바이오 제약 부문에서 수천억원의 이익이 노다지처럼 쏟아지면 저절로 사라진다. 이때쯤이면 "그래봤자 CMO(위탁생산) 사업체 아니냐"는 시장 일각의 삐딱한 언급도 쏙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적자 상태에서도 바이오로직스가 높은 공모가로 상장된다"는 점이 근본 해결책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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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05월 10일 14:02 게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