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 악재 지속…선제적 구조조정 필요성 커져
입력 16.05.20 07:30|수정 16.05.20 07:30
중국發수급 악화·전방산업 침체
정부 차원 대책 마련 목소리 높아
독과점 규제 예외 조치도 필요
  • 국내 철강업은 중국발(發) 수급악화·수요산업 침체 등 안팎에서 악재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5대 구조조정 산업에 철강업을 포함시키며 국가 차원의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발을 빼는 모양새다.

    관련 업계와 투자자들은 철강업이 조선·해운의 전철을 밝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선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철강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로드맵이 부재한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국내 철강업, 중국發 수출물량 감소·수입재 증가 악재     

    국내 철강업은 현재 ▲중국 경기둔화·과잉공급으로 인한 수급 악화 ▲국내 조선·건설 등 전방산업 침체에 따른 수요 약화가 이어지고 있다.

  • 국내 총 조강생산량은 지난 5년간 평균 0.4% 성장률을 보이는 데 그쳤다. 최대 수출시장인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수출은 2013년 775만톤에서 2015년 706만톤을 기록,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철강재 공급과잉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에 유입되는 중국 철강재로 인한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세계 철강 명목과잉설비 규모가 6억톤을 초과했다"며 "최근 중국의 설비축소 계획을 반영하더라도 역내 공급과잉규모는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철강 내수소비에서 중국 철강재가 차지한 비중은 24.9%로 집계됐다. 형강·후판·냉연·열연 등 주요 강종의 수입 비중도 모두 10%를 초과했다.

    ◇로드맵 부재·전문성 부족 등 정부 역할론에 대한 의문 커져

    정부 차원의 대책이나 산업 로드맵은 부재한 상황이다. 정부가 공급과잉을 예측하지 못하고 업체 간 설비경쟁을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코·동국제강의 해외 고로투자가 최근까지 이어졌고, 특수강 시장도 현대제철의 시장진입으로 경쟁심화가 예고돼 있다.

  •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뒤늦게 인수합병(M&A)·자산매각 등 자체적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비판하는 업계 목소리도 크다. 정부가 업계의 구조조정 노력에 역행하는 기조를 보이거나, 부실기업을 무작정 M&A 하도록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기로 업체이면서 부채비율이 8888%(2015년말 기준)에 이르는 동부제철을 기존 업체에 떠넘기려 한 것은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수강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포스코특수강(현 세아창원특수강)과 동부특수강(현 현대종합특수강) M&A가 선제적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불과 1년 전만해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조치를 받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컸다"며 "자체적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점 규제 차원의 접근보다는 지원책 마련 등의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철강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M&A 매물로 여러 차례 나온 특수강의 경우 다수의 업체가 여러 강종을 생산하는 구조다. 각 업체가 서로 겹치지 않게 품목을 나눠 생산하는 게 유리한데 이러한 이해 없이 정부가 일괄적으로 독점 규제를 적용하는 점은 아쉽다는 게 관련 업계의 목소리다.

    구조조정 정책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에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기원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는 "산업 내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시도를 한 기업에 대해 정부는 부가적인 혜택을 제공해야 하고, 독과점 규제를 풀지 않고 M&A가 이뤄질 수 없는 종목의 경우에는 예외적 조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정부와 업계 주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의 합병, 가와사키와 NKK의 합병 등 대형 철강사 합병을 통해 생산능력 최적화와 경쟁력 개선을 통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에 구조조정 맡기며 발빼는 정부

    현실적으로 정부가 역할을 확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총선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도 1년여 남짓이어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미 발을 빼는 모양새다. 지난 4월 정부는 "업계 스스로 철강산업 전반의 경쟁력 진단을 위해 자율적 컨설팅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컨설팅 결과에 따라 공급과잉 분야가 있을 경우 기업활력제고법 등을 활용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컨설팅 진행주최가 한국철강협회라는 점에서 그 효과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많다. 다수의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세아베스틸 등 주요업체들로 구성된 한국철강협회가 회원사의 이익에 반(反)하는 결정을 내리긴 힘들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당장 산업 위기가 현실화한 조선·해운업과 비교하면 철강업은 아직 기회가 있다. 동시에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업계 자율에만 맡기고,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조선·해운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업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기존 업체들은 국가 차원의 산업 구조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떨어진다"며 "정부가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