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계 보험사들 체질개선 하는데…농협생명은 '확장 또 확장'
입력 16.08.19 07:00|수정 16.08.19 07:00
농협, 여전히 저축성보험에 치중
전략 부재-단기 성과주의 탓
'방카 25% 예외' 중단되면 타격
  • 은행계 보험사들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시행을 앞두고 일제히 체질 개선에 들어간 가운데, 농협생명이 여전히 확장 정책을 고수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단기성과주의가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방카슈랑스 25%룰 예외 적용'이 만료될 예정임에도 새로운 성장 전략은 아직 안갯 속이다. 외형성장도 조만간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 여전히 저축성보험 집중…타 은행계 대비 '역주행'

    농협생명은 올해 상반기에도 성장을 이어갔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지난해 대비 11.4%, 3% 증가했다. 자산규모를 2조원 불리며 업계에서 네 번째로 60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출범 5년 만이다.

    성장동력은 '저축성보험'이다. 올해 상반기 농협생명의 저축성보험 판매규모는 1조2342억원으로 조 단위의 판매고를 올렸다. 보험업계 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빅3 보험사를 제외하고는 농협생명과 동양생명 정도가 이 기간 1조원 이상의 저축성보험을 팔았다.

    이는 다른 은행계 보험사와 뚜렷히 대비된다. 신한생명은 상반기 저축성보험 판매액을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인 2200억원으로 줄였다. 하나생명 등 다른 은행계 보험사들은 저축성보험 마케팅을 사실상 접었다. 저금리 상황이 계속되는데다 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재무적인 부담이 커지며 외형성장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공시이율에서도 이런 경향은 드러났다. 신한·KB·하나생명은 삼성생명(2.8%)보다 낮은 공시이율을 제시했다. 저축성보험의 경우 보험사 브랜드와 공시이율이 판매에 절대적이다. 자금을 안정적으로, 많이 불려줄 거라는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축성보험 판매 축소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들은 금융지주 차원에서 은행의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있다. 신한은행의 올해 상반기 방카슈랑스 수수료는 32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7%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의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입도 30% 감소했다. 당장의 수수료보단 보험계열사의 체질개선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농협생명과 비슷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건 비은행계인 동양생명 정도다. 동양생명은 올해 1분기 수입보험료(2조338억원)가 전년동기 대비 110% 성장했다. 다만 동양생명은 중국 안방보험에 피인수된 이후 국내 진출의 거점 역할을 맡게 됐다는 배경이 있다.

  • ◇ '방카통한 성장' 일변도…다른 전략도 대안도 없어

    농협생명의 덩치 키우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전략의 부재가 거론된다. 시장환경이 바뀌었음에도 이전의 영업전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들이 수년 전부터 질적 성장을 위해 판매채널 다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농협생명은 상대적으로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편중된 판매채널이 단적인 예다. 농협생명의 방카슈랑스 의존도는 90%가 넘는다. 농협은행의 전국단위 판매망을 활용하고 있다. 같은 은행계 보험사인 신한생명의 경우 방카슈랑스 비중이 채 20%가 안 된다. 영업채널이 한 곳에 집중되다 보니 다른 채널의 성장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설계사 조직은 2000명 수준에서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농협생명은 그간 방카슈랑스 25%룰(방카슈랑스에서 특정 보험사 비중이 25%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 예외 적용을 받아왔다. 농협은행이 농협생명 상품만 팔아줘도 위반이 아니었다.

    이 예외 적용은 내년 3월 끝난다. 보험업계에서는 적어도 올해부터는 농협생명이 채널 다변화를 위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 예측했지만, 아직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농협금융지주 내부에서는 "당연히 예외 적용을 연장해주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사실 이제와서 설계사 조직을 강화하려 해봐도 여건이 녹록지 않다. 생보사 설계사 수는 지난해 10만2148명으로 2012년 11만6457명 대비 12.3% 감소했다. 노령화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7년 20~30대 설계사 비중은 전체 설계사의 절반에 육박했지만, 지난해말 기준 25% 수준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50대 설계사 비중은 12%에서 29%로 늘었다. 설계사 인력 자체가 줄어드는데다 젊은 층의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조직을 확장하려고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나마 이전과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보험대리점(GA) 영업 채널 강화다. 농협생명은 지난 2014년 40여곳 수준이던 GA 제휴사를 지난해 100여곳으로 크게 늘렸다.

    그러나 이도 늦은감이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사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100여곳 이상의 GA와 제휴를 맺고 지금은 옥석가리기를 진행 중이다. 2014년 140여개 GA와 제휴를 맺은 신한생명이 대표적이다.

    GA에게 농협생명이 그렇게 매력적인 고객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GA 관계자는 "농협생명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데다 수수료도 '빅3'보다 10%가량 낮다"며 "농협생명은 GA 제휴 수만 늘릴 게 아니라 수수료 및 인센티브 체계를 다시 고민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확장 고수...연임 앞둔 사장 실적 때문?

    은행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성과주의'도 농협생명이 외형 성장에 몰두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농협생명 사장 자리는 농협금융 내에서도 요직으로 꼽힌다. 그만큼 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농협은행 부행장 출신 김용복 사장의 임기는 이제 반년이 남지 않았다. 연임을 위해선 올해 실적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깜짝 놀랄만한 실적 상승 없이는 연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이 나서서 저축성보험 판매를 줄일 유인이 없다는 설명이다. 당장 손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이를 나서서 하겠냐는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성과지표 중 주요항목으로 외형성장이 들어가 있는데, 연임을 준비하는 대표가 이를 굳이 포기할 유인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부실 정리에 나선 농협은행의 사정을 배경으로 꼽기도 한다. 농협은행은 올 상반기 1조3000억여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으며 손실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생명이 방카슈랑스 규모를 줄이게 되면 은행 수익이 더 줄어들게 된다. 농협은행은 연간 800억~1000억원 수준의 방카슈랑스 수수료를 벌어들이고 있다. 올 상반기 방카슈랑스 수수료(424억원)는 비이자이익(1370억원)의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수수료 수익을 위해서 방카슈랑스 규모를 줄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규제한도 내에서 방카슈랑스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 중 농협생명이 첫 고비와 마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방카슈랑스 25%룰 예외가 연장되지 않는다면 판매·수익 감소가 불보듯 뻔하다는 평가다. 만의 하나 연장된다 해도,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아래에선 저축성보험의 재무부담이 커져 지금같은 공격적인 확장 정책은 펼치기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