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룹 두 운용사' 어떻게 활용하나…고민에 빠진 KB금융그룹
입력 16.09.22 07:00|수정 16.09.22 07:00
'1그룹 1운용사' 원칙 폐지 이후, 첫 종합운용사 인수
  •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만나 '현대자산운용'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박 회장은 기껏 얻은 라이선스를 버리지 말고 대체투자나 헤지펀드로 특화하라고 권했다고 하더군요. 장기적인 방향은 맞지만 효율적일지, 시너지가 생길진 의문입니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

    현대증권을 인수한 KB금융그룹은 한국투자금융그룹, 미래에셋에 이어 복수의 운용사를 보유한 세 번째 금융그룹이 됐다. KB금융그룹은 최우선순위로 현대증권의 완전자회사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현대자산운용의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일단 KB금융은 현대자산운용을 일단 특화 운용사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래에셋이 산은자산운용(현 멀티에셋자산운용)을 활용하는 방식과 같다. 때맞춰 금융위원회가 '1그룹 1운용사'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업계 일각에서 '두 그룹을 위한 특혜'라는 말이 나올만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복수 운용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05년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 합병 과정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 외에 밸류자산운용을 인수하게 됐다. 다만 당시 밸류자산운용은 가치투자·장기투자 중심 부띠끄 형식으로 종합자산운용사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고, '1그룹 1운용사' 원칙이 나온 2009년 이전이었기 때문에 복수 보유가 가능했다.

    이로 인해 KB금융과 미래에셋의 '두 번째 운용사' 활용법은 향후 자산운용업계 재편 과정에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이들이 인수한 멀티에셋운용과 현대자산운용은 종합자산운용사다.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종합자산운용사가 타 그룹에 인수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용 면에서 한 그룹 두 운용사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각 운용사가 독자적인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그만큼 고정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금융위가 제도를 개편해 전산·인사 등 지원업무의 위탁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준법감시와 위기관리 등 핵심 업무는 위탁이 불가능해 별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두 자산운용사의 업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도 이슈다. 1그룹 1운용사 원칙이 완화되긴 했지만 업무단위는 구분해야 한다. 예컨데 멀티에셋자산운용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같은 주식-액티브 투자는 할 수 없다.

    일단 지금까지의 흐름은 전통자산에 대한 투자는 기존 운용사가 맡고, 인수한 운용사는 사모·대체투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래에셋은 대우증권 인수 과정에서 멀티에셋운용과 관련해 '특화 전문 운용사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헤지펀드와 항공·선박 투자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KB금융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KB자산운용은 주식형, 채권형 등 전통자산 펀드 규모가 현대자산운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국내 최대규모 인프라운용부서를 운영하는만큼 특별자산 투자 규모도 5조5000억원이 넘어간다. 현대자산운용은 부동산펀드에 비교적 강점이 있고, 펀드설정 규모도 KB자산운용보다 5000억원가량 많다.

    다만 이런 사모·대체투자 전문 운용사에 대한 운용업계의 시선은 아직까지 회의적이다. 시장 규모와 투자 자산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독자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규모를 갖출 수 있겠느냐는 평가가 많다. 만약 KB자산운용이 인프라운용본부를 현대자산운용에 넘긴다면 급여와 보상, 내부반발 등도 고려해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해외 사례와 같이 별도 법인을 통해 헤지펀드·부동산·인프라 부문을 특화시켜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국내 시장 규모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민연금조차 국내 대체투자 시장은 규모가 작아 투자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비중을 축소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 상품 부족으로 대체투자 목표치의 절반 밖에 투자를 집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업계의 다음 시선은 동양자산운용과 알리안츠자산운용으로 쏠린다. 동양생명의 대주주인 중국 안방보험이 지난달 말 알리안츠생명 인수를 위한 대주주 적격 심사를 신청하며 네번째 '한 지붕 두 운용사'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안방보험 역시 알리안츠생명 인수를 마무리하고 나면 계열 운용사 중 한곳을 특화할지, 매각할지, 아니면 합병할지 결정해야 한다"며 "KB금융이나 미래에셋의 움직임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