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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ㆍ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드러난 불편한 진실은 업황 불황에 대처하지 못한 기업들의 민낯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중장기 전략은 없다시피 했다. 그 전략을 세워야 할 전문가들이 부족하다는 게 더 치명적이었다.
얼마 전 정부 주도로 열린 조선·해운 구조조정 대책 세미나에는 금융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책 산업 연구기관도 있었다. 참석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명색이 나라를 대표하는 산업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인데,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뚜렷한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연구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업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의식 부재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산업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선 최소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前) 정권의 성과는 모두 부정되다시피 하니 연구의 영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력들, 특히 허리 역할을 할 젊은 연구원들이 떠나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인 산업 전략 방향성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국책 산업 연구기관들의 개선은 시급해 보인다. 동시에 시장의 관점에서 빈 틈을 채워줄 수 있는 민간 영역의 활용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증권사는 다소 한계가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루하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종목에 대한 매수, 유지, 매도를 언급하기에 산업 사이클을 소화하기에는 벅차다. 크레딧(신용)은 상대적으로 긴 호흡을 갖고 있지만, 증권업계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크레딧 분야는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꼽힌다.
신용평가사 활용법을 생각해 볼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 등급을 다루는 신평사는 채권 만기에 맞게 최소 3년, 길게는 10~20년을 지켜본다. 호흡이 길다. 그동안 쌓인 평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업 및 기업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신평사 입장에선 공적인 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존재의 당위성을 알리고 , 또 '명예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국내 신평사들은 이슈어(Issuer) 중심의 회사채 시장에서 기업들의 등급 쇼핑에 일조했다는, 또 기업들이 도산할 때마다 제 때 경고를 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독자신용등급 공시, 제4 신평사 도입 등 신평사에 대한 질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내 3대 신평사 중 2곳은 외국계여서 고배당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 신평사 연구원은 신평사의 공적 역할에 소명 의식을 갖고 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한국 금융 시장 발전에 일조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민간 기업이지만,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금융시장에서 신평사의 공적인 역할은 앞으로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에 신평 3사 모두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다 유의미한 리포트가 나오고 시의적절한 세미나와 포럼도 많아졌다. 일각에선 아직까지는 "질보다 양"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3사가 경쟁을 통해 시장 자체를 개선시키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결국 핵심은 이제 신평사도 숙련된 산업 전문가 육성에 있다. 그동안 한계가 있었다. 과거 금융감독원 규정에 신평사 애널리스트는 동일 업체에 대해 실무자는 4년, 책임자급은 5년을 초과해 평가할 수 없었다. 기업과의 유착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산업에 대한 전문성 축적은 포기해야 했다. 전문가로 키워졌어야 할 주니어 애널리스트들은 신평업계를 떠나 다른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체로 이직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올해 이 규정이 폐지가 됐다. 신평사들은 "좋은 평가를 위해선 좋은 애널리스트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 수도 적을 뿐더러 그 같은 역량을 갖춘 애널리스트들을 키우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지금부터라도 산업 전문가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필수불가결하다.
조선과 해운에서 비롯된 산업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점을 통과한 것일 수 있다. 그동안 국가 경쟁력 강화에 한 몫했던 산업들이 언제 어떻게 위기를 맞을 지 모른다. 그 때도 지금처럼 산업 전문가 부재를 탓할 수만은 없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국책 연구기관에 대한 장기적 플랜을 갖추는 기본이다. 여기에 신평사 같은 민간 영역에 대해 적절한 감시와 함께 동기를 부여해야 국가의 산업 방향성을 잡을 수 있는, 다양하고 좋은 도구(Tool)들을 취할 수 있다. 신평사 입장에선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금융시장의 주요 주체로서 평판 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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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0월 20일 15:17 게재]
[Invest Column] 국책연구원에도 해당 전문가 찾기 어려워
공적 기능 측면에서 신평사 활용 생각해봐야
공적 기능 측면에서 신평사 활용 생각해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