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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미국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80억달러, 우리 돈으로 9조4000억원에 인수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단종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 단숨에 자동차 전장시장에서 메이저 업체로 탈바꿈하게 됐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삼성전자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딜(Deal)이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1. 신속하게 이뤄진 M&A…이후 승인사항은?
말 그대로 깜짝 인수 발표였다. 삼성전자가 공시와 보도자료를 내놓기 전까지 이를 인지한 시장 관계자들이 거의 전무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도 긴 시간 고민을 한 딜은 아니였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자문사는 일절 고용하지 않고, 해외 투자은행(에버코어 파트너스 Evercore partners)와 로펌(폴헤이스팅스 Paul Hastings) 만 고용, 이번 거래를 단행했다.
직전까지 삼성전자는 이탈리아 피아트크라이슬러의 부품 사업부문인 마그네티마렐리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삼성전자 측은 양 사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져 이뤄진 딜이라고 평가했다.
데니스 팔리왈 하만 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기술의 변화는 누구도 모든 제품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번 협상은 시너지와 성장을 위한 것이며 파트너십에 관한 것으로 이 선택들이 앞으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후 진행될 사안들은 남아있다.
일단 이사회를 통한 하만 주주들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만과의 매매계약서 상에 '다른 인수후보로부터의 추가 제안 금지 조항'(No-Shop Clause)이 담겨있지 않는 한, 하만 측은 삼성이 아닌 다른 후보들의 제안을 알아본 뒤(Shopping) "삼성전자의 제안이 주주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가격"이라는 점을 주주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각 국 정부의 기업결합과 관련, 반독점 승인도 필요하다. 국가별로 통상 30~75일이 필요하다. 거래가 완전히 종결되는 시점은 이르면 내년 3월, 늦으면 상반기 중이 될 전망이다.
2.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로 무엇을 얻었나?
삼성전자가 사업부까지 만들며 자동차전장사업 진출을 공표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마그네티마렐리 인수는 삼성전자와 피아트의 논의가 길어지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프랑스 오디오기업 포칼(Focal) 인수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종착지를 글로벌 오디오 공룡기업 하만으로 잡았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로 단숨에 자동차 전장 메이저업체로 거듭나게 됐다. 하만은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텔레매틱스(Telematics), 보안, OTA(Over The Air;무선통신을 이용한 SW 업그레이드) 솔루션 등의 전장사업 분야 글로벌 선두 기업이다. 또 JBL,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카오디오에서는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며 전세계 시장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도 하만을 통해 이제 글로벌 오토메이커들과 진지하게 사업논의를 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게 됐다.
회사 전체적으로 보면 전장사업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오디오 부문에서 업계 1위 업체를 인수함으로써 관련 연구개발(R&D)의 기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이미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전장사업 관련 투자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의지가 거짓말이 아니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주들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위시한 외국인 주주들은 삼성전자의 과도한 내부보유 현금 규모를 지적하며 투자를 하든, 배당을 늘리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딜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외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확보했고, 또 한번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딜은 삼성전자의 신사업 투자 방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업계 1위 업체를 인수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하고 실패의 부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직접 연구개발(R&D)을 통해 사업을 진행 중인 LG전자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3. 하만 인수가 M&A 시장에 미칠 영향은?
이번 거래는 순수 현금거래로 이뤄진다. 삼성전자의 넉넉한 보유 현금 때문에 가능하다. 기존의 숱한 금융기법들도 수십조원이 들어있는 통장 잔고 앞에 무색해지는 모양새가 됐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가 국내 M&A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M&A 시장에선 매물이 쏟아지면서 자금력이 달리는 기업이 각종 금융기법과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여 무리한 M&A를 진행했고 그것이 발목을 잡아 두산, 금호의 경우처럼 그룹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반복돼 왔다”며 “삼성전자의 M&A는 결국 ‘100% 현금으로 살 수 있으면 인수해라’라는 단순한 명제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제 국내 시장에서 마땅한 매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로스보더 M&A가 더 활발해 질 가능성이 높다. 그 주체는 역시 삼성전자와 같은 대규모 현금을 보유하는 기업들이 될 전망이다.
기업이 직접 딜을 주관하게 되면서 그동안 주관사 역할을 맡은 증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들의 역할도 서류작업에 국한되는 등 크게 축소될 수 있다. 벌써부터 IB 시장에선 M&A 시장에서 먹거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지된다.
4. 삼성전자는 왜 지금 하만 인수를 발표했나?
삼성전자는 올 들어 여러 악재에 부딪혔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주주가치 제고 명목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갤럭시노트7이 단종되며 치명상을 입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이번엔 정치권 비리에 휘말려 이 부회장은 8년만에 검찰에 소환됐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발표는 공교롭게도 이재용 부회장의 검찰 조사 하루 뒤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10조원 가까운 M&A를 오너의 결단 없이 경영진이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여러 악재에 휘말리면서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는 시점에서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한 수’를 꺼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검토를 하고 승인을 한 사안이고 이 부회장 역시 이사회 임원이기 때문에 결정과정에 참여한 것은 맞다”며 “다만 이 부회장이 직접 미국에 가서 협상을 했느냐에 대해선 경영진 일정을 확인하기 어려워 답변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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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1월 15일 11: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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