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지 못하는 현대상선…꼬이는 해운업 구조조정
입력 16.11.28 07:00|수정 16.11.28 19:27
[Weekly Invest] 한진해운 미주노선, 벌크선사 '대한해운' 품으로
4개월째 진전없는 현대상선의 2M 가입
현대상선 구조조정에 한진해운과 같은 원칙 적용할지 의문
  • 현대상선의 경쟁력 강화를 주축으로 하는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이 역시 꼬이고 있다. 한진해운의 마지막 알짜자산들이 현대상선이 아닌 선사에 넘어가면서 현대상선의 덩치키우기 작업은 벌써부터 제동이 걸렸다. 현대상선이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가는 전제조건 중 하나인 2M 얼라이언스 가입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또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일각에서는 현대상선 구조조정이 당초 계획과 어긋나게 된다면 한진해운에 적용했던 구조조정 원칙을 정부가 현대상선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 '벌크선사' 대한해운이 한진해운 미주노선 인수

    정부는 당초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알짜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무너진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은 벌크선사인 대한해운(SM그룹)이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노선 영업망과 물류시스템 등을 370억원에 사가면서 뒤틀리기 시작한 모양새다.

    대한해운은 한진해운 미주노선과 함께 미국 롱비치터미널(TTI) 지분 54%, 아시아지역 터미널인 HPC 터미널, 장기간 배를 계약하는 연속항해용선계약 1건의 우선매수권도 확보했다. 이 롱비치터미널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권이 있는 MSC가 매수권을 포기한다면 사실상 한진해운의 알짜자산 대부분은 대한해운이 가져가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중소선사들의 한진해운 미주노선 인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점쳐졌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무너진 미주노선 내 영업망·네트워킹을 초기에 재구축해 운영하는 데에는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대한해운 컨테이너선 정기선 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상당 기간 신규 진입에 따른 학습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라며 "인수 자금과 별개로 추가적인 영업망과 내륙수송 서비스 구축, 터미널 확보, 컨테이너박스 리스 등 사업 영위를 위해 필요한 추가 투자 부담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2011년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했던 대한해운은 2013년 SM그룹으로 편입되면서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이후 장기운송계약(2015년 매출의 70%)을 기반으로 사업을 재구성,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5001억원, 영업이익 835억원을 거뒀다.

    ◇ 4개월째 지지부진한 현대상선의 2M 가입

    해운업 구조조정의 또 다른 중요한 단추인 현대상선의 2M 얼라이언스 가입은 계약 기간 등을 놓고 이견이 생기며 4개월째만 양해각서(MOU) 이상의 협상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머스크·MSC가 속한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은 내년 4월에 공식 출범될 예정이다. 150일이 소요되는 미국 항만 당국의 운영약정서(OA) 승인 심사기간을 고려했을 때, 현대상선의 2M 가입 본계약은 늦어도 다음달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현대상선의 합류 여부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국내외 안팎에서는 머스크가 얼라이언스가 아닌 선복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현대상선과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점치고 있다.

    머스크가 현대상선을 2M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필요성은 정부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개시를 선택하면서 대폭 줄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이후 한진해운이 용선하던 선박의 화주 중 일부는 해당 배들을 머스크에 넘겼다. 또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흡수하지도 못했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환태평양 노선 강화를 위해 현대상선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선복교환' 수준의 협력은 얼라이언스의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항공사 간의 얼라이언스와 유사한 개념인 선사 간의 얼라이언스는 선복공유부터 터미널을 비롯한 기타 자산의 공유까지 범위가 넓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머스크·MSC와 어느 범주까지 자산을 공유하느냐에 따라 '얼라이언스' 합류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운업 구조조정이 꼬일 대로 꼬이면서 한진해운 대신 현대상선을 택한 것으로 해석되는 정부의 선택이 오판이 아니었냐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이 2M 가입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정부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물류대란으로 인한 유무형 자산 손실과 그로 인해 계속되는 2·3차 피해 규모는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한진사태를 매듭지어가며 현대상선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복안은 업계의 설득력을 쉽게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금융당국은 "현대상선의 2M 가입을 위한 본계약은 내달 완료될 것"이라고 언급할 뿐 시장에서 제기하는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