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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해운사인 스위스 MSC가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현대상선과 손을 잡고 있다. 2M 가입이 절실한 현대상선을 이용, 자금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롱비치터미널의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책략'으로 풀이된다.
롱비치터미널 경영권이 MSC로 넘어갈 확률이 높은 현재 구도에서 현대상선은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MSC가 속한 2M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과 조건부 자율협약 졸업의 기대감 정도지만 가입의 실질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해운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그리고 현대상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롱비치터미널을 차지하기 위한 MSC의 전략에 휘둘려 이용당하는 모양새다. 오로지 "연내 현대상선을 2M 얼라이언스에 합류시켰다"라는 명분 확보에 급급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운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해운업 구조조정 초기부터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제대로 된 전략이나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는 커녕, 인수후보들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마저도 현대상선을 비롯한 국내 해운업체에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 롱비치터미널, 지난해 순이익만 448억…국내외 선사들이 탐내는 곳
한진해운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며 보유하고 있던 롱비치터미널 경영권(54%)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인수한 대한해운, 현대상선-MSC 컨소시엄,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이주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격제안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제안된 가격들을 검토해 이르면 다음주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미국 서부항만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롱비치터미널은 한진해운의 마지막 우량자산이다. 한진해운과 MSC는 자회사 토털터미널인터내셔널(TTI)를 통해 각각 54%, 46% 지분을 보유하며 공동으로 이곳을 운영해왔다. 해운업황이 악화했던 지난해에도 이 터미널은 매출 6447억원, 순이익 448억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약 70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회생절차에 돌입한 이후 터미널에 투입하던 한진해운 물동량이 모두 사라지면서 지금은 자본잠식(자본총계 -3029억원)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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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롱비치터미널 지분에 대한 우선협상권은 앞서 한진해운 아시아-미주노선 운영권을 인수한 대한해운이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우선협상권'은 대한해운이 제시한 가격이 낮다고 해도 상대후보들이 제시한 가격에 맞춰 자사가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대한해운이 자금을 더 투자할 의지만 있다면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권한이 MSC가 보유한 '우선매수권'이다. 한진해운과 맺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MSC가 확보한 이 우선매수권은 행여 대한해운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로 매각가격을 확정해도 이 가격에 최종적으로 MSC가 살 수 있는 권리다. 우선매수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MSC는 인수의지만 강하다면 단독으로도 지분인수가 가능하다. 입찰(가격제안)에 참여할 필요도 없다.
이 같은 상황 속 MSC는 현대상선과 컨소시엄을 맺고 입찰에 참여했다.
롱비치터미널 지분은 대한해운이 옛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이용할만한 국내 또는 해외 대형 화주를 확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해운은 자금력이 다른 대형선사보다 풍부하지 않다. 한진해운이 TTI 지분을 담보로 미국 은행으로부터 빌린 3000억원과 연간 운영자금 1000억여원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지기에는 재무적으로 무리다.
업계 관계자는 "롱비치터미널에 물동량을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대형 선사라면 해당 대출금에 대한 부담이 적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사들은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는 대한해운과 현대상선에 "컨소시엄을 맺어 입찰 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대한해운의 이런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곧이어 MSC와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 MSC, 현대상선 통해 부채부담 줄이고 경영권 확보기회…현대상선, 2M 합류 가능성 커져
어떤 식이 됐든 이번 컨소시엄 구성으로 MSC로서는 이득을 보게 될 전망이다.
현대상선, 그리고 현대상선의 자율협약 졸업을 위해 만전을 기하는 산업은행을 자금줄로 활용가능하다. 부채를 포함한 인수가격에 대한 부담을 덜어냄과 동시에 기존 46%의 지분에 추가로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됐다. 단독인수 시보다 자금은 덜 든다. 화주나 물동량 확보면에서 대한해운보다 나은 현대상선과 컨소시엄을 맺음으로써 롱비치터미널의 수익성 제고 또한 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MSC는 대한해운에도 우회적으로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운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MSC측 인사가 대한해운에 롱비치터미널 인수를 포기하고 현대상선을 인수하게끔 하는 것이 낫겠다는 연락을 했다"며 "대신 MSC가 보유한 롱비치 인근의 조그만 터미널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2M 가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으로서는 2M의 주요 축인 MSC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컨소시엄의 조건 및 세부적인 계약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MSC와 손을 잡는 모양새가현대상선의 2M 가입에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상선의 2M 가입 실효성이다.
명분상으로는 '가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지만 실제 현대상선이 누릴 것이 극히 제한돼 있다.무엇보다 머스크와 MSC는 현대상선의 2M 가입조건으로 현대상선이 선대를 확장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이 보유한 터미널에 대한 사용 또한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MSC와 함께 롱비치터미널의 공동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2M 가입의 의도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며 "MSC의 경우 현대상선을 이용해 싼값에 경영권을 확보 할 수 있지만, 현대상선은 2M 가입이 된다 하더라도 실효성을 거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상선이 MSC측에 터미널에 대한 경영권, 거래의 주도권을 내어주면서까지 자금을 쏟아부어봤자 얻을 것이라곤 "현대상선이 드디어 2M에 가입했습니다"라는 허울뿐인 명분에 그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해양수산부 등은 별다른 대안 없이 MSC의 전략에 이끌리는 모습이다.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대상선을 2M에 가입시키는 것이 목표인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현대상선-대한해운-한앤컴퍼니 등이 모두 단일 컨소시엄으로 함께 롱비치터미널을 인수하는 그림이었다"며 "다만 급작스럽게 현대상선이 MSC와 손을 잡게 된 점이 현재 상황을 야기한 뒷배경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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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2월 04일 09:30 게재]
현대상선 손잡은 MSC, 부채부담 줄여…경영권 확보 기회
현대상선, 2M합류하려면 손해보더라도 MSC 눈치 봐야
MSC의 승자독식 체제 유력...끌려다니는 해수부·산은
현대상선, 2M합류하려면 손해보더라도 MSC 눈치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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