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만 '쏙' 빼간 네이버…스타트업 투자 분위기에 '찬물'
입력 16.12.19 07:00|수정 16.12.19 19:50
음원 스트리밍 업체 '비트'…투자유치 실패로 회사 청산수순
박수만 대표 친정행…개발진 10여명과 '네이버'로
"사실상 '인력 빼가기'…스타트업 투자 분위기 냉각 우려"
  • 네이버가 자사가 투자했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비트(BEAT)'의 청산을 앞두고 대표 및 개발자들을 내부로 영입했다. 비트 개발진의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해 합류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스타트업의 기업의 재기를 돕는다면서 오히려 '인력 빼가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분위기가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벤처캐피탈(VC)업계에 따르면 음원 어플리케이션(앱) 개발업체인 비트패킹컴퍼니는 최근 청산수순을 밟고 있다. 창업자인 박수만 대표를 포함한 개발자 10여명은 네이버 자회사 라인플러스로 합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만 대표는 비트패킹컴퍼니를 창업하기 전 네이버에서 미투데이와 밴드(BAND)를 개발한 이력이 있다.

    2013년 설립된 비트패킹컴퍼니는 무료 음원 스트리밍 앱인 비트(BEAT)를 개발·운영했다. 비트 이용자는 광고를 듣거나 보는 대신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2014년 초 서비스를 시작한 비트는 매달 가입자수가 세 배 이상씩 증가해 서비스를 시작 10개월만에 누적회원수 15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엔 누적회원수 600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행법상 무료 음악 서비스 업체의 음원사용료 징수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스트리밍 사용료로 멜론(Melon)·지니뮤직 등 유료 음악 서비스 업체들 대비 약 두 배(1곡 당 7.2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비트가 음원 사용료로 매달 지불한 금액은 거둬들이는 광고수입의 4배 이상이었다. 결국 투자금 대부분을 음원 사용료 지불하면서 적자를 지속했고 지난달 30일 서비스 중단에 이르게 됐다.

    비트는 설립 이후 네이버를 비롯해 본엔젤스파트너스·IMM인베스트먼트·LB인베스트먼트·캡스톤파트너스·유니온투자파트너스 등 10여개 VC업체로부터 투자금을 유치받은 바 있다. 결국 회사 청산과 함께 주요 인력들의 네이버행이 알려지자 그간 투자를 집행해온 VC업계는 허탈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인력이 회사 자산의 대부분인 스타트업 업계에서 네이버만 이득을 챙긴 것이라는 지적이다.

  • 한 VC업체 운용역은 "VC들이 5개 업체에 투자할 때 회수율이 30% 미만이므로 투자회사의 청산과 손실인식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비트는 다른 스타트업과 달리 투자금을 많이 유치했고, 대표와 개발자들이 네이버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트) 경영진과 네이버의 모럴헤저드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에는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실패한 기업도 기업가치를 일정 정도 반영해 인수하는 관행이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네이버의 '인력 빼가기'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VC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스타트업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스타트업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일정 부분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Acqhire(acquire+hire)' 문화가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과 같은 IT공룡들이 다수 실패한 스타트업을 인수해 품어주는 'Acqhire'를 활발히 해온 것도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불씨가 사라지지 않도록 일정 정도 역할을 하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IT공룡인 네이버가 비트의 기업가치를 일정 정도 평가해 M&A하는 '선례'를 남겼다면,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문화나 모험투자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을텐데 우수 인력만 데려가고, 해당 업체는 고사되는 '한국식 대처'에 그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박수만 대표와 개발진들이 네이버로 합류하는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며 "기획력·개발력이 뛰어난 박 대표가 개인사업을 정리한 이후의 거취로 네이버를 선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