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적들에 둘러싸인 음식료업계
입력 17.01.13 07:00|수정 17.01.17 15:06
전반적 주가 하향세 지속…장기투자 매력 서서히 떨어져
경기침체에 신규 장수 브랜드 등장 어려워
  • 국내 음식료업계의 주가 하향세가 심상치 않다. 전반적인 가격 인상 움직임, 조류인플루엔자(AI) 창궐 등 호재와 악재가 혼재돼 있지만 대부분 단기적 이슈에 속한다. 정작 관련업계와 금융시장에선 경기 침체와 소비자 기호 변화에 기인한 이른바 ‘보이지 않는’ 구조적 악순환을 경계하고 있다. 장시간 버틸 수 있는 재무여력이 업체 간 격차를 벌일 요소가 될 전망이다.

    국내 식품가공 시장 구조는 사실상 과점 시장이다. 건과와 빙과, 음료 시장은 롯데, 오리온, 해태 등 4~5개 업체가 경쟁 중이다.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중심의 라면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고 유가공 시장 역시 7~8개 업체 중심의 준과점 시장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식품가공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낮은 경기민감도, 광범위한 수요기반, 강화된 과점구조, 생활필수품으로서의 역할 등으로 상대적인 안정성이 있다”며 “다른 수출기업들과 비교해 치열한 경쟁을 펼칠 요인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음식료 업계의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에 지난해 업계는 다양한 주가 부양 수단을 가동했다. 롯데제과와 크라운제과는 액면분할을, 매일유업과 오리온, 크라운제과와 샘표는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에 나섰다. 단기적 주가 부양 수단이 될 법한 조치들이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주가 하향세는 지속되고 있다. 안정적인 투자처이긴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 음식료 업계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내 음식료 업계는 내수침체로 인한 민간소비의 둔화 지속, 거기에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소비자들의 기호라는 ‘보이지 않는 적’들에 둘러싸인 모양새다. 경기 침체와 소비 둔화가 구조적 문제라면 기호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 갈수록 대응하기 어려운 변수다.

    제과업계만 보더라도 해태제과가 2014년 처음 선보인 허니버터칩은 품귀현상까지 보이며 최대 히트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해태제과는 이에 대응하고자 공장 증설에 나섰지만 이후 판매량은 기대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상반기 히트상품이었던 ‘바나나’ 관련 제품도 전철을 밟고 있다. 오리온과 롯데제과는 각각 ‘초코파이 정(情) 바나나’, ‘몽쉘 초코&바나나’의 생산라인을 늘렸지만 열기는 곧바로 식었다. 이른바 음식료 업계에 자리잡고 있는 ‘증설(增設)의 저주’다.

    유통업계는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했다. 유통 대기업들의 최근 트렌드는 제조업 진출과 PB(자체브랜드) 제품 육성이다. 이 역시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방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마트의 PB인 ‘피코크’와 ‘노브랜드’다. 관련 전문 판매점이 생기고 수출도 시작됐다. 대형 유통회사와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전가력이 떨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음식료 업체들이 유통 대기업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정체와 경쟁 심화는 음식료 업체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매일유업, 오리온, 롯데 제과, 농심, CJ제일제당 등이 중국, 베트남, 중동, 러시아 등에 진출하고 있다. 현지 공장 증설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초기 단계로 오리온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해외 부문 실적이 부진하다.

    NICE신용평가는 “해외 현지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입맛과 식생활 문화와 같은 무형의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며 “해외시장 진출시 상당한 인적 및 물적자원의 투입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해외시장 공략의 성패 여부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다”고 평가했다.

  • 판매량 정체에 대응하기 위한 음식료업체의 신제품 개발과 적극적인 설비투자, 해외 진출과 사업다각화는 차입금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문제는 투자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차입금은 줄지 않고 현금창출력은 떨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관련업계에선 소비자 기호 변화 속도에 발맞춰 생산 체계 역시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넘어가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업체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진 피부로 와 닿진 않지만, 분명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그동안 국내 식음료업계는 몇몇의 장수 브랜드로 버텨왔는데 그 유효기간은 짧아지고 있고, 새로운 장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음식료 업계는 이미 성숙기 상태로 접어들어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 곡물가격, 환율 등 변동성이 높은 상수들은 항상 존재한다. 장기 불황에 버틸 수 있는 재무여력을 확보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즉 음식료 업계에도 이제 현금창출력을 의미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과 순차입금이 중요한 관리 지표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