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오너리스크' 진통…정공법으로 신뢰 회복해야
입력 17.01.19 07:30|수정 17.01.19 07:30
부품사업 비중 커진 전자만 순항
신사업·인사 등 사실상 올스톱
지배구조 개편, 시간·비용 늘 듯
  • 삼성그룹은 '청와대 게이트'를 통해 오너 리스크를 여실히 드러냈다. 재계의 다른 그룹들과 비교를 해봐도 오너 1인을 향한 권력 집중도가 심하고 이를 대체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가 불확실해지면서 국내 재계 1위 삼성의 앞날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월 중순이 지났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들의 인사는 물론 투자계획 등 사업 전략도 수립하지 못했다. 그룹 차원의 신사업 확장, 비주력 사업 정리 등 사업 구조개편은 불확실해졌다.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삼성은 앞으로 모든 사안을 '정공법(正攻法)'으로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룹의 주축인 삼성전자는 당장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논란과 사상 초유의 대규모 리콜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D램·낸드플래시 사업 호조에 힘입어 시장 기대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 삼성전자의 상승세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사업은 말 그대로 분위기를 탔다는 평가다. 거기에 갤럭시S8이 출시되면 IT·모바일(IM) 부문도 정상 궤도에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올해 안에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 나온다. 국내 증권사들은 앞다퉈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220만~25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올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호황기가 예상돼 부품업 비중이 커진 삼성전자에는 호재”라며 “지금의 삼성전자는 오너리스크가 현실화하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오너의 전략적 판단과 결단력이 중요한 사업 구조개편에는 제동이 걸리거나 속도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장성을 보여주는 계열사들이 없다. 삼성생명·삼성화재는 상황 유지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조선·건설 등 비전자 사업에 대한 전략 수립 발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가 확대하면서 사실상 인사, 사업추진 등이 모두 올스톱 상태”라며“길게는 향후 몇 년간 각 계열사가 각자도생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오너리스크가 신사업 확장에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지난해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CES 2017'에서 하만은 첨단 기술과 제품들을 선보이며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런데 오너리스크가 현실화 할 경우 하만 같은 기업의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신사업인 바이오에서도 M&A의 중요도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제한적이다. 이재용 부회장 외에 이들 사업을 주관하고 책임질 경영진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1등 기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너 경영인의 판단과 결단이 어느 그룹보다 중요하고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반대의 경우에는 그만큼 위험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며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기로 한 상황에서 오너 부재시 계열사들을 관장할 컨트롤타워가 없고, CEO급 이상 임원 중에서 자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들도 없다는 게 삼성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급물살을 탈 것 같던 삼성전자 분할 등 경영권 승계작업 역시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논의와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 등으로 삼성전자의 조기인적분할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이 청와대 게이트의 공범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야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인적분할할 때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면 해당 지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 추가 발의를 하면서 조기 단행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삼성물산의 성장성에도 시장에선 의구심을 나타낸다.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대대적으로 밝혔던 양사의 사업적 시너지는 이미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이는 연일 하락하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나마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었지만, 이마저도 ‘오너 또는 정치적 리스크'에 기약하기어렵게 됐다.

    정치적으로 삼성 오너 일가와 최고 경영진은 수세에 몰렸다. 이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삼성 역시 현시점에서 논란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포함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대선 레이스가 종료된 이후, 다시 말해 이르면 2분기에나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Samsung)'이라는 브랜드에 붙어있던 프리미엄 효과도 당분간 기대하기어렵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에 투자할 때 삼성 프리미엄이 아닌, 실적과 같은 실질적인 지표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들이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삼성의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 경영권 승계 작업은 무엇보다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더 투입되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정공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삼성그룹의 올해 가장 큰 숙제는 삼성전자의 실적 확대, 신사업 확장도 아닌 주주와 여론의 신뢰 회복, 그리고 오너 일가의 승계 정당성 확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