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에 다시 힘 싣는 증권사들…독립성은 숙제
입력 17.02.02 07:00|수정 17.02.03 09:46
증권사, 올해 다시 PE 조직 강화 움직임 분주
기존 수익모델 약화로 PE 투자 중요도 높아져
과거에도 PE 러시 있었으나 부정적 인식만 각인
조직·운용인력의 영속성과 의사 독립성 확보 과제
  • 증권사들은 조직개편과 인력 충원을 통해 사모펀드 부문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증권계 PE들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는 증권사의 전통적 수익 기반이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투자 성공 사례도 증권사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풀이된다.

    증권사의 기대가 결실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증권계 PE들은 의사결정의 독립성이나 핵심 운용인력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던 터라 의미 있는 시장 참여자로 성장한 사례가 드물다. 보수적이고 절차가 많은 조직 문화와 창의성과 신속성이 필요한 PE업은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먹거리 필요해진 증권사…PE 조직 개편 및 인력 확충 분주

    올해 증권사들은 수위 그룹이건 중소형 그룹이건 투자은행(IB), 그 중에서도 사모펀드(PEF) 부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조직 개편과 더불어 핵심 인력도 보충하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동양매직(현 SK매직) 매각으로 300억원의 수익을 낸 NH투자증권은 IB사업부 안에 있던 PE본부를 올해부터 CEO 직속으로 옮겼다. 양영식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략운용실장이 PE본부장으로 새로 영입됐고,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전망이다.

    유시화 SK증권 PE본부장은 작년 말 SK그룹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2012년 초 상무 승진 후 약 5년만의 조기 승진이다. SK그룹은 보통 상무에서 전무까지 6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본부장은 PEF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조직을 이끌며 손꼽히는 운용사로 키웠다. 작년엔 JW생명과학, 한국자산평가 등 회수로 10년내 최대 수익을 올렸다.

    IBK투자증권도 IB사업부 소속이던 PE사업본부를 독립·재편했다. 작년까지는 채권전문가인 유식열 전무가 PE를 비롯한 IB사업부문을 총괄했으나, 올해부터는 이승주 전 우리PE 대표가 PE사업본부를 이끈다. 섞여서 운용되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별도 본부를 만들어 운용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PEF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증권사들도 본격적인 PE 사업 강화에 돌입했다.

    KB증권은 지난해 JW생명과학 기업공개(IPO) 주관을 인연으로 JW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PEF 투자를 집행했다. 그룹 내 PEF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어 올해도 몇 건의 프로젝트 PEF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경험이 많지 않은 만큼 확실한 목표를 설정해두기 보다는 PE 조직 기반을 다지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 한화투자증권은 IB본부를 핵심사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의 일환으로 PE팀을 신설했고, 키움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도 PEF 부문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 수익 모델의 힘을 잃은 증권사들이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란 평가다. 이미 경기 악화와 주식 시장 침체로 증권사로의 자금 유입은 줄어들고 있다. 작년엔 시장금리 급등으로 증권업계 4분기 채권 투자 손실액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경기 개선에 따른 개인 소득 증가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선 증권사의 수익 개선도 요원하다.

    증권계 PEF 관계자는 “증권사의 전통적 수익 기반이 점점 약해지는 반면 지난해 PEF 투자 성과 사례는 종종 있었던 것이 올해 증권사들이 PEF 사업을 강화하는 배경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증권계 PE 과거에는?…취약한 독립성과 인력 이탈 약점 노출 사례 많아

    증권사들의 PEF 육성 및 지원 의지가 실효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도 낮은 독립성과 잦은 핵심 운용인력 이탈이라는 약점만 노출했던 사례가 많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과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등 내로라 하는 회사를 위시한 증권사들의 PEF 도전 붐이 한 차례 일었다. 그러나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고 성과를 낸 경우는 손에 꼽았다.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거나 장기 미제로 남기 일쑤였다. 레이크사이드CC와 샘표식품, 유피케미칼 등 사례로 증권계 PE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만 강하게 남겼다.

    증권계 PE는 매번 생존 경쟁에 맞닥뜨리는 독립계 PE에 비해 안정적이다. 반면 경직돼 있고 느린 의사결정 체계, 상대적으로 박한 성과보수, 빈번한 인사 변경 가능성 등은 그 반대급부다. 새로운 거래를 찾고 성과를 내려는 동기나 책임감이 약해진다. 핵심 운용인력은 대형 실패 사례가 있어도 퇴직하면 그 뿐이고, 보란 듯이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증권계 PE는 고위층의 의지에 따라 성사 가능성이 낮은 거래 참여나, 계열사 골치거리를 떠안을 해결사 역할을 요구 받는 경우도 생긴다. PE 부문이 좋은 성적을 내기라도 하면 고위층이 서로 자기 부서로 끌어다 붙이려는 알력 다툼이 벌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의 역량에 대한 검증은 강화하지만 PE 부문도 ‘자리’다 보니 비(非) 전문가가 꿰차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적 논리에 따라 조직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금융계 PEF 관계자는 “펀드 운용의 안정성이 중요한 기관투자가(LP) 입장에선 핵심 인력 변경이 잦고,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증권계에 높은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IBK투자증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증권계 PE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IBK투자증권은 수년 새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한진해운 스페인 터미널 등 굵직한 거래를 담당한 핵심 운용인력들이 대거 이탈했다. 과도한 목표 설정과 그로 인한 성과보수 갈등, 인력 유출에 대한 책임 추궁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PE 진용을 새로 꾸린 것도 불가피한 수습이란 평가가 나온다. LP들은 일단 인력 구성은 됐으니 운용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NH투자증권 역시 사장조차 농협중앙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PE에 얼마나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이야 증권계로 볼 수 있지만 본류는 NH농협은행의 PE단이다. 증권계로서의 역량 검증은 올해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기존 단장은 지난해를 끝으로 물러났고 최근의 조직개편이 이어졌다.

    해묵은 과제에도 그나마 증권계 PE가 성장할 길을 찾으려면 보다 높은 수준의 독립성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 법인화된 증권사 산하 PE들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아직 찾기 어렵지만, 적어도 사내 부서로 있을 때보다는 의사결정의 자율성이나 책임감이 높아질 수 있다. 증권계 PE 직원 중에서도 완전한 독립으로 자가 운용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