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인용으로 사드 제2 국면...재계 '후폭풍 촉각'
입력 17.03.16 07:00|수정 17.03.16 07:00
중국 사드 보복에 롯데그룹 '휘청'
마트 영업정지·생산 중단 등 타격
지배구조 개편·인사에도 영향
관광·항공·화장품 업계도 '빨간불'
과거 대만·日 사례도 보복 장기화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정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자 사드 배치를 비롯한 기존 정부의 정책이 정당성을 상실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변화를 기대하는 중국은 관영 매체들이 나서 중국 내 사드반대에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는 등 유화책을 쓸 기미를 보이기도 했다. 차기 대선 유력 주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나 배치 철회 등을 주장하고 있음을 감안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상황 변화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사드 배치 철회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요청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대선 주자들이 사드 배치 번복을 주장하기에는 외교적인 변수가 많은데다 대선에서 '안보·자주국방' 이슈는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함수가 복잡해지면서 결국 단기간 내 사드 정국이 해결될 기미는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롯데그룹과 한국기업들에 미칠 여파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롯데...여파는 '확산일로'

    최일선에서 사드 폭풍을 맞이하고 있는 롯데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롯데는 대대적인 인사개편 후 10일 만에 2인자로 등극한 황각규 사장 주재로 첫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문제가 중국 롯데마트 영업정지로 본격 가시화된 직후였다. 신동빈 회장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실시간으로 롯데의 중국사업장 타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롯데마트 무더기 영업정지 ▲롯데슈퍼 벌금 폭탄 ▲롯데제과 상하이 공장 생산중단 ▲롯데칠성음료 제품 통관지연 등이 이어지며 중국 의존도가 높은 계열사는 매출에 비상이 걸렸다. 투자가 진행 중이던 3조원 규모의 선양 롯데타운과 2조원 규모의 청두 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국내 은행권은 롯데그룹 중국 계열사에 제공한 여신 점검에 나섰다.

    롯데그룹 투자자들도 고민에 빠지게 됐다. 롯데는 지난 20년간 중국에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중국내 유통사업에 쏟아은 금액만 5조원대다. 백화점·할인점·슈퍼마켓 등 문어발식 확장으로 중국시장 선점을 노렸지만 성과가 부실했다. 가장 비중이 큰 할인점 사업을 보면 흑자점포가 없을 정도다. 투자자들은 수시로 롯데에 '중국시장 철수'를 요구했다.

    롯데의 중국시장 철수는 단순히 매출이나 이익 문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그룹 전체의 경영권 분쟁과 맞물린 미묘한 퍼즐이다. 롯데를 둘러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난에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신동빈 회장에 대한 가장 큰 공격지점이 '중국 진출 실패'였다. 중국 시장 철수가 진행되면 신동빈 회장이 자칫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분쟁의 불씨를 다시 만들어주는 격이 된다.

    중국발(發) 사드 보복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대대적인 조직개편 때 롯데는 새 비즈니스유닛(BU) 수장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지주체제로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황각규 사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중국사업장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면서 이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가 국민에게 약속한 호텔롯데 기업공개(IPO)에 미칠 여파도 만만치 않다.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호텔롯데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면세사업부 실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각종 해외사업 확장으로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던 그림도 구체화하기 어려워졌다.

    롯데가 집중해 온 인수·합병(M&A)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롯데케미칼이 싱가포르 업체 JAC 인수전에 예상보다 보수적으로 참여하는 등 중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의 각종 투자 건은 한동안 제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다.

  • 타격을 입는 곳은 롯데만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관광·문화콘텐츠를 넘어 면세점·항공·호텔·관광·화장품과 심지어 프랜차이즈·스타트업 업계에 속한 기업들에까지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예약자 수가 줄었고 항공사 예약률도 실질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등 고공행진하던 화장품사 주가는 한때 사드 보복 앞에서 무너졌다. 화장품사 주가를 떠받치는 축 중 하나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국내 기업의 중국 관련 매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업계는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로 신규 업체들의 도태가 예측보다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자동차 부품사의 중국 통관절차가 몇 배씩 길어지는 등 이들의 중국판로 유지에 적신호가 켜졌다. 평소에는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 부분에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의 태도가 사드 배치 이후로 돌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 국면이 장기화할 지 불확실한 상황이라 중국의 경제보복은 또 다른 한국기업이나 산업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공장을 보유한 현대자동차와 대형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 타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의 보호주의로 수출 길이 막힌 국내 기업들에겐 숨통을 틔워주던 중국시장까지 벽이 될 공산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언제까지 이어질까...中'보복', 6년 넘어서기도

    과거 중국이 다른 국가에 펼친 '보복 사례'를 보면 단기간에 매듭지어진 경우는 흔치 않았다.

    2010년 중국은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 위원회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수상자로 결정하자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했다. 2010년 이전 노르웨이산 연어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90%에 달했지만 2011년 이후로는 30%로 폭락했다. 중국은 6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서야 양국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고 사태를 마무리했다.

    일본도 중국의 경제보복 대상이었다. 2012년 9월 일본 정부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국유화 조치 이후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이어졌다. 중국 내 일본 자동차 판매는 한때 80%가량 감소하기도 했다.

    중국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희귀금속인 희토류의 일본 수출도 중단했다. 당시 중국산 희토류는 일본 시장에서 90%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과 일본은 사태 발발 3년이 지난 2014년 11월 사태를 종결했다. 양국은 "센카쿠열도 등 동중국해 해역에서 발생중인 긴장 상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라며 "정치적 상호신뢰 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자"고 선언했다.

    대만은 중국의 ‘관광보복’을 받은 나라다. 2016년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된 이후 양국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이 대만 관광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의 제재 이후 4개월 연속 대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30%씩 줄었고 2016년 10월엔 중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당시 관광업계 종사자 2만명이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응할 만한 해결책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WTO 제소를 검토하고 무역대응을 점검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모습만을 보여줬다. 기업들이 펼칠 뾰족한 대응책도 없다. 사드 배치 자체에 대한 논란은 이번 대선 이후까지 이어질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