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할 이유도, 의지도 없는 제약사들
입력 17.03.22 07:00|수정 17.03.22 07:00
제네릭 중심 안정적인 매출…변화 의지 약해
똑같은 약효 가진 제네릭 수백 개…M&A 효과 '제한적'
검증 안 된 신약개발사社…"시너지 있겠지만, 너무 비싸다"
M&A 가로막는 폐쇄적·보수적인 내부 문화
  • "제약사 M&A? 안 돼요. 여전히 국내에서 M&A에 가장 소극적인 데가 제약업계고, 변화도 더딜 겁니다" (모 제약사 고위 관계자)

    국내 제약사 간 인수·합병(M&A)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국내 제약사가 적극적인 M&A 행보를 보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지적한다. 제약사 대부분이 동일한 제네릭(복제약)을 판매하고 있어 M&A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인수 효과를 거둘 만한 신약개발 업체들은 고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폐쇄적인 내부 문화를 거스르면서까지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내 제약사 대다수는 제네릭 중심 사업구조로 안정적인 매출을 거두고 있다. 제네릭은 오리지날 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후 공개된 기술·원료 등을 이용해 만든 약품이다. 같은 오리지날 의약품을 보고 만든 제네릭은 모두 동일한 약효를 갖는 셈이다. 19조원에 이르는 전체 국내 제약시장 가운데 제네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 수준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만성질환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하지만 국내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10%를 꾸준히 넘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국내제약 시장 규모 증가가 복제약 가격 인하 정책을 방어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지금의 사업 형태가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변화를 택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인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이라면 모든 제약사가 제네릭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의 한올바이오파마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웅제약은 2015년 1046억원을 들여 한올바이오파마 지분 약 30%를 인수했는데 당뇨약 치료제, 소화성 궤양용제 등 양사가 판매하는 제네릭 제품군이 여럿 겹쳤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동일한 제네릭을 판매하면 당연히 피인수 기업의 제품 보단 기존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냐"면서 "같은 약이 100개까지도 있는 현재 상황에서 제약사가 다른 제약사를 인수하면 결국 동일한 제품군으로 시장에서 피인수업체와 인수업체가 경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개발에 주력하는 바이오 업체 인수 또한 쉽지 않다. 기술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바이오 기업을 비싼 가격에 살 유인이 적다.

    현재 국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바이오 기업 대부분은 이제 막 연구개발을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에 있다. 연구 중인 기술로 특허를 취득한 기업은 드물고, 외려 특허 취득을 위한 임상 등 지속적인 투자금 투입이 필요한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 그간 자본력·생산공장 등을 보유한 제약사와 기술력을 갖춘 바이오 업체 간 M&A의 필요성은 꾸준히 거론됐지만 그 사례는 많지 않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인수할 만한 대상은 그나마 신약개발 하는 바이오 업체들인데 이들의 밸류가 너무 높아 M&A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본금이 50억원인 바이오 기업이 현재 200억원 수준 기업가치로 거래되는 것을 고려하면, M&A를 위해 400억원은 필요하다는 얘긴데 아직 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바이오 기업을 어떤 제약사가 사겠냐"고 반문했다.

  • 국내 상장된 헬스케어·생명과학 등 신약개발 바이오 기업들은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 4~5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평균 PBR은 1~2배다.

    제약사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역시 제약사들의 M&A를 요원하게 한다. 가족경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제약사들은 대부분 사업 확장보다 안정적인 승계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M&A를 토대로 신약물질 확보·해외 진출 등에 나서려는 제약회사는 셀트리온이나 한미약품뿐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지주사 전환에 나선 J사의 경우 오너 3세가 사석에서 아버지 반대로 M&A 못 한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며 "비교적 변화나 시도에 관심이 많은 오너 3·4세들이 M&A를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창업주나 임원들 그리고 연구원들은 '지금껏 M&A 없이도 돈을 잘 벌어왔는데 굳이 왜 하냐'며 반발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