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롯데, 자본시장에 문호(門戶) 낮췄다
입력 17.03.23 07:00|수정 17.03.24 14:18
롯데글로벌 투자 유치하며 풋옵션에 IPO까지 보장
사드 보복에 검찰수사…자본시장서 다급해진 롯데
  •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짠돌이'로 유명한 롯데가 달라졌다. 최근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메디치인베스트먼트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사례를 두고 롯데가 국내 자본시장에서 몸을 낮췄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롯데의 처지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그룹 내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거기에 중국이 사드 경제보복의 대상으로 롯데를 지목하며 직격탄을 가하고 있다.

    메디치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롯데그룹과 오릭스PE가 공동인수했던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대한 지분 투자를 확정하고 펀드 결성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펀드 규모는 2960억원으로 공제회·은행 등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투자가들이 고르게 참여했다.

    투자자들이 주목한 부분은 그들에게 부여된 '풋옵션'이었다. 롯데그룹은 이례적으로 투자요인을 높이는 안전장치를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했다. 여기에 메디치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기간인 5년이 지나기 전에 롯데그룹은 3년 이후부터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대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과거 IB시장에서 낮은 수수료 지급 등으로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업계 평균을 한참 밑도는 수수료를 주며 증권사들의 볼멘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수·합병(M&A)시장에서는 단골손님으로 통하지만 법률자문 수수료를 과도하게 낮게 책정하곤 했다.

    그러던 롯데가 투자기관에 낮은 자세를 취하며 투자를 유치하자 IB업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시장 참여자에 많은 이익을 챙겨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롯데가 이번 건에 있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까 우려했던 게 사실"이라며 "'시장 친화적'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국내서 자본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롯데가 인식한 듯하다"고 밝혔다.

    롯데가 고자세를 버리자 국내 은행이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점 역시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롯데그룹은 시중은행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은 기업 중 하나였다. 롯데는 일본계 은행을 통해 초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내 은행권에서도 낮은 수준의 금리를 원했다. 지난 2014년 KT렌탈(현 롯데렌탈)을 인수할 당시 은행 대출금리를 회사채 조달금리에 맞춰달라고 요구해 은행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거래 관계자는 "은행들 사이에서 롯데그룹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데다가 일반 기업 주식은 물론 PEF 출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은행들이 잘 하지 않는 거래"라면서 "그런데도 이번 딜(deal)에 은행들이 출자자로 참여했다는 것은 앞으로 롯데그룹이 평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요소"라고 말했다.

    롯데가 고집을 꺾은 데에는 다급해진 안팎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초유의 사드 보복 사태에 직면하며 롯데의 국내외 자본시장 입지는 좁아진 상황이다. '형제의 난'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업'인 점을 강조하며 일본 색채 지우기에도 나섰다.

    동시에 롯데의 강한 물류업 육성 의지도 한몫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물량은 현재 일부 내부물량으로 국한돼있지만, 물류업은 향후 그룹의 핵심사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롯데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한 이후 물류센터 등을 재정비하진 못한 상태로 손실을 보며 물류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B2B(기업간 거래) 물량을 확대할만한 여력이 커 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