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재미ㆍ업종도 다양"…국내 VC들, 유럽 투자에 주목
입력 17.03.24 07:00|수정 17.03.24 07:00
창업자들 열린 마인드...한국처럼 무조건 고밸류 고집 적어
투명한 경영 정보 공개…물리적 거래 부담 '상쇄'
활발한 M&A로 '회수 안정성' 확보도 장점으로 부각
  • 국내 벤처캐피탈(VC) 업체들이 유럽에 주목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로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유럽 특유의 기업 문화,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안정적인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유럽 VC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평가다.

    캐주얼 게임업체 시리어슬리(Seriously)·아르마다(Armada)·소셜카지노 게임사 휴즈(Huuuge) 등에 투자한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최근 6조원 규모인 영국 VC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영국 팀'을 꾸렸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지난해 NHN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영국 맞춤형 항암제 개발업체 셀레론 테라포틱스에 투자한 바 있다.

    미래에셋벤처는 벤처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핀란드 알토대 출신 심사역을 활용해 유럽 투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수의 VC들이 유럽 투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내부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VC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VC들의 해외투자 증가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최근에는 2000년대부터 집중했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를 넘어 유럽을 새로운 투자처로 생각하고 주목하는분위기"라고 전했다.

  • 비교적 낮은 밸류에이션이 유럽 VC투자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유럽의 경우 적정 수준의 기업가치가 형성돼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게 느껴지고, 이에 따라 높은 투자수익도 거둘 수 있다는 전언이다.

    반면 국내 VC시장엔 매년 대규모 공적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실적이나 성장성이 뒷받침 되지 않은 벤처기업들조차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자연히 VC들의 고수익을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펀드 조성액은 전년도 대비 17.9% 증가했지만, 신규 투자는 같은 기간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 VC업체 운용역은 "너무 많은 돈이 몰려 적정한 밸류(에이션)으로 투자할 만한 업체들은 점점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운용역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수익 낼 만한 곳은 엔젤라운드 뿐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유럽 스타트업 창업자들 특유의 마인드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VC업체 운용역은 "정서적으로 국내 벤처 창업자들은 외국서 공부했고 힘들게 창업했으니 당연히 높은 밸류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유럽은 좋아서 혹은 재미 있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무조건 고밸류를 받겠다는 경향이 덜 하다"며 "국내와 달리 유행하는 한 업종에 우르르 몰려가지 않는 것도 (유럽 스타트업의) 성장성·투자 수익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중국·동남아 스타트업들과 달리 이익지표 등 각종 경영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해외 투자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계약서 상에 명시된 투자자로서의 권한 등을 해당 기업이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가 중요한 투자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배경이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계약 준수가 체화돼 있어 사후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후문이다.

    해외 투자를 전담하고 있는 한 VC업체 심사역은 "유럽은 상법상 국내와 상이한 점이 크게 없고, 결정적으로 실적 등 KPI(핵심성과지표)도 요구하기 전에 업데이트 하는 것은 물론 우선주주로서의 협의권·동의권도 잘 준수한다"며 "중국의 경우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한국 업체들은 잘 잊어버린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회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M&A를 통한 회수가 활발하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까지 유럽 VC투자금 회수 비중(건수 기준) M&A가 86.3%로 가장 많았다. 그 외 회수는 IPO(기업공개·13.7%)를 통해 이뤄졌다.

    반면 국내 VC들의 회수는 작년 말 기준 장외매각·상환(45.4%)에 치중돼 있다. IPO에 선뜻 나설 수 없는 벤처 기업이라면 장외시장에서 지분매각도 어렵기 때문에 회수가 원활하지 않는 셈이다.

    다른 VC업체 심사역은 "국내 벤처시장의 가장 큰 문제가 '회수'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라며 "이런 이유 등으로 해외투자에 나서는 VC들도, 사실 동남아는 엑시트가 불안하다고 토로하는데 유럽의 경우 M&A가 활발해 회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다는 게 메리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