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 대우조선 '해결사'로 재등판...요원해진 정책금융기관 혁신
입력 17.03.31 07:00|수정 17.04.03 09:19
금융위, 대우조선 회생에 또 산은·수은 앞장세워
"정상화 책임 묻기 위해서라도 재편 불가"
시장은 '정책금융기관 혁신 늦어질라' 우려
  • 대우조선해양 회생을 결정한 금융위원회와 정부가 또 다시 KDB산업은행을 '해결사'로 내세웠다. 이번 사태로 조선·해운업 이후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차기 정권에서 논의돼야 할 정책금융기관 혁신과 방향성 설정이 다시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대우조선 회생 계획의 중심에는 산은이 있다. 전체 무담보 채권액(3조8000억원) 중 40%가 넘는 1조6000억원가량을 산은이 수출입은행과 함께 100% 출자 전환한다. 부족 자금(2조9000억원) 추가 지원과 선수금환급보증(RG) 신규 발급이라는 '짐'도 산은과 수은이 나눠 진다. 기한은 정상화 후 인수·합병(M&A)이 마무리될 때까지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 정상화에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위도 2018년은 돼야 조선업황이 개선세를 보일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대우조선 자체의 문제도 있다. 작년 말 기준 수주 잔고는 생산 능력(capacity)의 두 배를 상회하고 2018~2019년에 납품해야 할 비중도 높다. 그러니 설비 축소도 당분간 어렵다.

    이 과정에서 산은과 수은은 대우조선 자구(自求) 노력 이행 점검과 금융 지원이라는 '역할'을 다시 수행해야 하게 생겼다.

    산은은 그간 STX조선해양·한진해운·대우조선 등 관리에 실패하며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당초 차기 정권에서 민영화 등을 포함해 산은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구체화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 밑그림이 나오기 도전에 대우조선 사태 해결에 다시 앞장서게 됐다. '재등판'한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 역할 조정이라는 근본적 혁신안에 대한 무게감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경제연구소 산업 담당 연구원은 "대선 전후로 정책금융기관 혁신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우조선 회생이 끝날 때까지는 책임 소재를 두기 위해서라도 산은·수은을 재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선 직후가 아니면 '정책금융기관 혁신'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추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예상이 대부분이다.

    정책금융기관 혁신안은 정권 출범마다 반복돼온 구문(舊文)이었다. 다만 성공한 적은 없다. 산은의 경우 혼선이 가장 심각했다. 지난 MB정부 당시 산은의 민영화 방향이 설정됐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난 후 흐지부지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거꾸로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강화하며 분사시켰던 정책금융공사도 합병, 민영화를 무산시켰다.

    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과 산업 전반적인 구조조정 플랜의 부재 속에서 낙하산 인사를 반복해 정권 눈치만 보게 만들었다. 이후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만 관련부처는 뒤로 빠지고 산은과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과 채권단만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로 인해 매번 '부채 재조정'만 논의될 뿐, 국가차원에서 산업 재조정에 대한 고려와 대응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이번 대우조선 사태에 대한 정부와 금융위의 대응책도 역시 다를 바 없다는 것.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수년 뒤 예상만큼 대우조선의 실적이나 부채상환이 예상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또 모든 책임 문제를 고스란히 채권단에만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20년 가까이 활용해 온 이른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도입됐던 구조조정 방식에서 단한발짝도 진일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과다한 부채와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따른 과다한 부채 문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쇠퇴 이로 인한 공급 과잉 등 복잡다단한 문제가 수반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단순 채무 재조정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다. 이번 금융위 회생안이 '급한 불만 끄려는 금융 지원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관 부처·기관을 통합해 산업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정책금융지주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정책금융기관 간 중복 기능과 마찰을 줄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로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다른 경제연구소 금융 담당 연구원은 "조선·해운 이후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 혁신 지연으로 인한 피해는 금융위가 언급한 '59조원'보다 클 수 있다"면서 "공공성이 큰 산업의 구조조정은 통합 컨트롤타워를 마련해 대응하고, 수익성이 큰 산업은 민간에 일부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