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민간 구조조정, '유암코' 전철 밟을 우려
입력 17.04.18 07:00|수정 17.04.19 18:30
정부 기대와 달리 GP·LP 참여 '글쎄'
국내 자본시장 소화 여력 있나 의문
결국 '정부 역할론' 재부각될까 우려
  • 금융위원회가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사모펀드(PEF)에 개방한다. 주체를 정부에서 민간으로 바꾸겠다는 복안이다. 해외에서 PEF가 구조조정 시장의 주요 참여자로 자리 잡은 선례를 감안하면 '방향은 맞다'는 평가다.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부실채권(NPL) 시장이 안착한 것처럼 민간 주도 구조조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 유암코(UAMCO)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당국의 기대와 달리 정작 시장에서는 PEF의 참여를 낙관적으로 내다보지 않고 있다. '아직은 돈이 안 된다'는 평가다. 구조조정 투자는 법원 승인 등 규제 문제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정상화가 지연되고 수익률이 낮아질 우려다.

    구조조정 투자는 일반 투자와 다르게 법률 지식도 필요하다. 운용 인력이 서너 배 더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부실 기업 개선에는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관련 경험을 보유한 인력도 많지 않다. 과거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운영에 참여했던 인력 정도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주요 운용사(GP)는 기업 구조조정 매물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수익률이 낮아 투자를 검토하지 않아서다. '민간 주도'가 아닌 '유암코 주도' 구조조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고위험 펀드에 돈을 댈 출자자(LP) 역시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시달린 국민연금공단이 구조조정 투자 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활약할 가능성은 낮다. 보수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연기금·공제회 역시 구조조정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8조원 규모 마중물 펀드의 우선 손실 충당 구조가 어떻게 짜여지느냐가 LP 유치의 관건이다.

    국내 자본시장에 기업 구조조정을 소화할 여력이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GP와 LP 모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정책금융기관으로 대두되는 정부 역할론이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어두운 전망이다. 마중물 펀드의 출자자(유암코·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 모(母)펀드 운용사(한국성장금융), LP(국민연금) 등 새 구조조정안을 떠받치는 주체는 정부다.

    가격 평가 방식을 두고서도 '민간 주도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 원하는 가격만 제시하다 때를 놓치는 일을 막기 위해 '금융 채권자 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준거 가격을 제시할 예정이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가격 책정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 셈이다.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고민도 빠졌다. 대우조선 사태를 거치며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특히 민·관 합동 형태가 아닌 단순 PEF 주도 구조조정은 채권단 주도보다도 산업을 고려하기 어렵다. '알맹이' 없는 구조조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 재지원 결정 후 금융위 주장처럼 '재무제표만 보고 회생 여부를 결정할 수 없어서'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금융위를 통해서만 기업 구조조정을 관장하고 있는데, 민간 구조조정이 안착하려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유관 부처가 전부 나서서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