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금융사 규제 완화 후… 창투사 등록 '뚝'
입력 17.04.18 07:00|수정 17.04.19 10:08
신기술금융사, 51개→70개로 늘어
창업투자회사·창업투자조합 증가세는 둔화
신기사·창투사 규제환경 '온도차'
"초기는 창투사, 후기는 신기사…벤처투자 영역 나뉠 것"
  • 벤처투자 시장 무게 중심이 창업투자회사에서 신기술금융회사로 움직이고 있다. 작년 하반기 신기술금융회사와 이들이 결성하는 신기술투자조합이 눈에 띄게 늘어난 반면, 창업투자회사 등록 수는 뚝 떨어졌다. 신기술금융회사 규제가 완화되는 동안 창업투자회사를 둘러싼 규제 환경이 제자리 걸음을 한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1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신기술사업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회사는 총 70개로 전년도 대비 19개사가 늘었다. 신기술사업금융업을 아예 전업으로 하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이하 신기사)도 2015년 25개에서 31개로 늘었다.

    반면 지난해 신규 등록한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는 8곳에 그쳤다. 전년도엔 14개사가 신규 등록했다.

  • 새롭게 설립되는 벤처투자 회사들은 대부분 신기사 인가를 신청하고 있다.

    우선 현정은 회장의 사재출연이 화제가 된 현대그룹 내 투자사 현대투자네트워크도 신기사 라이선스 취득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반건설·보광산업 등 벤처투자 전문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들도 창투사가 아닌 신기사로 가닥을 잡았다.

    기존에 창투사 라이선스를 받아 벤처투자를 하던 곳들은 창투사 라이선스를 반납하고 신기사로 전환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산하 YG인베스트먼트와 지엠비인베스트먼트·제미니투자가 대표적이다. 대경창업투자도 최근 신기사 전환을 결정했다. 이외에 적지 않은 창투사가 신기사 전환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기사가 결성하는 벤처펀드인 신기술투자조합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새롭게 결성된 신기술투자조합은 127개로 전년도 보다 3배 가까이 늘어 처음으로 창투사가 만드는 창업투자조합·한국벤처투자조합 수를 넘어섰다. 2016년 창투사가 만든 신규 벤처조합은 120개로 전년도 보다 10개가 늘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근거한 신기사는창투사와 마찬가지로 장래성은 있지만 자본·경영기반이 취약한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중소기업청이 관할하는 창투사와 달리 금융위원회가 주무 부처다.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위원회가 나서 신기사 앞 길을 열어줘 벤처투자 시장에서 신기사 목소리가 커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기사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벤처투자 내 관할 영역을 넓히고자 신기사 관련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성장사다리펀드 출범을 시작으로 벤처투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6년 잇따라 신기사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여전법 개정안도 내놨다. 지난해 신기술금융회사 설립요건인 자본금 조건이 2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조정됐다. 증권사 등 금융투자회사에 막혀 있던 신기술사업금융업 겸영도 허용됐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신기사) 자본금 요건 완화에 이어 증권사 등의 신기사 겸영도 허용되면서 중기특화 증권사를 중심으로 신기술금융업 진출이 이어졌고, 새롭게 벤처투자에 나서는 곳도 창투사 보단 신기사로 라이선스를 받고 있다"며 "투자 비히클인 신기조합이 창투조합 보다 규제 정도도 약해 투자할 때 편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벤처투자 사업을 두고 벌였던 샅바싸움에서 금융위가 중기청을 한 발 앞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다른 VC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도 완화지만 모태펀드가 앞으론 신규 출자금을 편성하지 않고 회수된 금액을 재출자 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태펀드가 회수자금을 재출자하다 보니 펀드당 (모태펀드) 출자금이 작아져 굳이 모태펀드 출자금을 반드시 받겠다는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라며 "최근 도입된 창업·벤처 전문PEF에서도 창투사는 배제되는 등 벤처투자 사업에서 금융위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일각에서는 창투사는 엔젤 투자부터 초기·중기단계 벤처기업에, 신기사는 후기 및 프리IPO 단계의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벤처투자 시장이 양분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다른 VC업계 관계자는 "창투사가 오랜 기간 초기단계 기업들을 투자·관리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이제 막 설립한 신기사가 따라 잡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신기사가 시장을 전부 장악하기 보다는 나눠 가져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창업투자회사는 창업 단계부터 3년 이내인 초기단계 벤처기업에 가장 많이 투자했다. 반면 신기술사업금융회사가 투자한 업체의 절반 이상은 업력이 7년 이상된 후기단계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