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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일본에서 껌과 초콜릿을 팔아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기업’, ‘짠돌이’라는 수식어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011년 롯데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신동빈 회장은 이런 그룹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부회장 시절 발표한 ‘아시아 톱10 글로벌그룹’이라는 비전은 그룹 이미지의 변신 일환이었다.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 글로벌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며 덩치를 키웠고 석유화학은 그룹의 또 하나의 사업 축이 됐다. 롯데는 이제 단순한 소비재·유통 기업이 아닌, 대규모 장치산업을 영위하는 B2B(기업간거래) 기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형과의 경영권 분쟁은 이미지 변신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국정농단 사태 연루는 한동안 ‘시작’ 버튼을 다시 누르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다.
위기 상황에서 신동빈 회장의 선택은 ‘유지’와 ‘안정’이다.
2월에 단행한 조직개편의 키워드는 정책본부의 역할 축소와 비즈니스유닛(BU) 체제 전환이다. 그동안 롯데에 오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일면 조직개편은 롯데가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발 다가섰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3개월이 지났지만, 내부 평가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폐청산 기회를,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최대 일주일에 3∼4회가량 법정에 나가야 할 수도 있다. 정식재판에는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이미 3월말부터 롯데그룹 경영비리 재판에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일주일에 2회씩 출석하고 있다.
신 회장이 재판에 매달리면서 그룹 경영은 사실상 공백 사태를 맞았다. 장기간 해외 출장이 쉽지 않아 해외사업을 챙기기도, 6월말에 있을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준비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너의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BU 체제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롯데의 혁신 속도는 더 늦췄다. CEO들이 전격적인 책임 경영을 하기에는 그룹 문화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사업부 수장들 역시 그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룹 내부 한 관계자는 “BU 체제가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는데, BU 대표를 위시한 임원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재판 진행 상황만 지켜보고 있다”며 “개별 계열사들이 하던 일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경영 공백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BU장이 신동빈 회장과의 접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오너 경영인의 어시스턴트 이미지가 더 강하다는 평가다. 재계에서는 현재 롯데그룹의 위기를 SK그룹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비교한다. 최태원 회장이 부재했던 '수펙스' 1~2기와 달리, 복귀 후 3기 체제에선 50대의 최 회장 사람들이 주요 계열사 대표로 전면에 배치됐다. 최 회장의 생각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다. 그리고 활발한 내부 경쟁이 시작됐다.
반면 현재 롯데그룹에는 신동빈 회장의 생각을 읽고, 발벗고 나서 이를 수행할 사람이 없다.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활력이 없다. '그린라이트'가 켜져도 뛸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임원들이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만들지도 않으려 하는 공무원 조직이 됐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 역시 아버지의 사람들에서 자신의 사람들로 세대 교체의 연착륙을 원했겠지만, 자신의 사람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안팎의 악재들이 불어닥치면서 손 쓸 방법이 없어졌다"며 "고(故) 이인원 부회장의 모든 것을 떠 안고 떠났지만, 딱 거기서 멈췄고 그 이상의 변화는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기업', '짠돌이', 이제는 '형제의 난'과 '국정농단'이라는 적폐의 꼬리표가 더해지면서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가 이런 곳인가"라는 '자괴감'을 호소하는 이들이다. 퇴근길, 잠실벌에 홀로 솟아 유난히 반짝이는 롯데월드타워를 바라보면 뿌듯함을 느끼기 보다 씁쓸함을 토로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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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5월 30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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