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박하다"는 제약사 vs "못 믿겠다"는 신용평가사
입력 17.06.29 07:07|수정 17.06.29 07:07
신인도 불신하는 제약사…"지나친 저평가"
지나친 신비주의에 라이선스 계약 취소 등 저평가 요소 많아
  • 전문 의약품 중심의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고수하던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과 기술 수출로 눈길을 돌리며 하나둘 연구·개발(R&D)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크레딧 시장도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신약 개발은 오랫동안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인 만큼 공모채 시장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평가다.

    하지만 제약업계 및 신평업계 사이에선 제약사의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약사가 여전히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신용등급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공모채 발행을 위한 첫 단추꿰기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공모채 발행을 위해선 신용평가사에 신인도 평가를 의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회사는 재무구조·향후 사업 계획 등 회사의 내부 정보를 신용평가사에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행 뒤에도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만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이는 곧바로 유통금리에 반영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평사에선 신인도 평가 전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CFO(최고재무책임자) 등 주요 경영진과 미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약사는 '우리가 왜 굳이 그런 것들을 알려줘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 제약사 가운데 신용등급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16년 말 매출액 기준 상위 10개 업체 중 유효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는 곳은 절반 정도다.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곳은 더 적다. 실제 일부 제약사만 2~3년에 한번 꼴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발행금액도 1000억원을 넘기는 일이 드물다. 올 상반기에도 녹십자만이 공모채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일각에선 신용등급을 두고 제약사와 신용평가사의 마찰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약사는 신용평가사의 제약 업종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내고, 신용평가사는 이 같은 태도에 대해 회사의 비협조적인 자세가 보수적인 평가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신평업계 관계자는 "유한양행은 (회사채) 발행 목적보다는 자체 신용도 점검 차원에서 평가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가 때마다 '이게 정말 맞는 거냐'며 신용도에 불만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부여받은 신용도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제약사들이 좀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신약 개발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업체의 경우 불만의 정도가 더 크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투자 계획 발표만으로 긍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주식 시장에 비해 지나치게 깐깐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신평사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신약 라이선스 계약이 취소되는 등 일련의 사태를 경험하며 임상 계획만으로 성장 잠재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학습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신평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업체 중에선 JW중외제약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회사 측 반발이 심정적으로 이해되지만 한미약품의 계약 취소 등으로 주식 시장도 임상 계획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신평업계 관계자는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제약사가 평가 과정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신평사들의 의구심을 키워 평가가 더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판촉비·접대비 등 불법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는 제약사의 재무제표를 그대로 믿어야 할지 신뢰가 가지 않을 때가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