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출신 인력' 눈독 들이는 투자업계
입력 17.09.05 07:00|수정 17.09.04 18:17
젊은 실무진 영입 시도 늘어나...운용사·벤처·바이오 회사로 이직
내부통제·법률지식·인맥 등 활용해 투자 시장 적응 빨라
  • 회계사·IB 인력이 선호됐던 투자시장에서 최근 한국거래소 출신 인력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법률에 대한 이해와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점이 시장에서 선호받는 이유로 꼽힌다. 그간 젊은 실무진의 이동이 많지 않았던 거래소에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거래소는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공기업으로, 여의도 내에서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다수의 직원들이 서울 지사와 부산 본사에서 순환근무 하며 정년을 채운다.

    그러나 최근 투자 업계에서 거래소 출신 인력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그간의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다. 올해 들어 거래소의 주요 실무진 두 명이 운용사와 바이오기업으로 이직했다.

    임용빈 전 코스닥 심사팀 과장은 지난 5월 포커스자산운용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거래소 출신이 자산운용사로 스카웃된 것은 임 상무가 처음이다. 임용빈 상무는 최경수 이사장 시절 거래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이후 코스닥 심사팀에서 올해 초까지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심사했던 인물이다. 국내 IB 실무진 뿐 아니라 투자회사, 기업 관계자와의 교류가 많아 업계에서도 '마당발'로 불린다. 임 상무는 자산운용사에서 투자처 발굴과 투자 기업의 내부통제 등을 전담하고 있다.

    같은 달 공시팀 소속 박웅갑 부장도 거래소를 퇴사했다. 박 전 부장은 비상장사인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으로 이직해 부사장 직책에 올랐다. 10년 이상 코스닥 기업의 상장 심사를 담당했던 인사로 기술특례상장에도 직접 관여한 경력이 있다. 박 부사장은 바이오 심사 제도와 관련 경력을 토대로 소속 회사의 상장 업무를 총괄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대리'에서 게임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된 원용준 전무의 이야기는 이미 시장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거래소 10년차 대리였던 원 전무는 당시 벤처게임사였던 더블유게임즈의 CFO로 영입됐다.

    김가람 더블유게임즈 대표의 강원과학고 후배이기도 했던 원 부사장은 거래소 상장유치팀에서 쌓았던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1년 뒤 더블유게임즈를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올 초에는 국내 크로스보더 거래로는 다섯 번째로 높은 소셜카지노 회사 DDI 인수에 성공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거 정년퇴임을 앞둔 임원들이 주로 이직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정년을 앞두거나 이사장이 바뀌어 자리에서 물러나는 임원을 기업체나 법무법인이 영업해 높은 대우를 해준 경우는 많다. 현재까지 법무법인 김앤장과 태평양, 율촌, 화우 등에 총 7명의 거래소 임원 출신이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최근 퇴사한 이들은 정년까지 10년 이상 남은 젊은 인력이어서 거래소 내부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거래소 출신들은 자본시장법 등 법률 지식에 해박해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들의 내부통제를 주도할 수 있어 투자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퇴사 이후에도 거래소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또다른 매력이다.

    상장유치·심사 경험이 있는 실무진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IB와 협업할 기회가 많아 변호사, 회계사와 함께 투자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직군으로 평가받는다. 벤처 투자 대상 기업 발굴에도 용이해 운용사들도 주요 영입 대상으로 꼽는다. 금융기관과 IB, 기업체 등과의 작업량도 많아 활용할 수 있는 정계 인맥도 상당하다.

    거래소 출신 인력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출신 인력들은 주로 프리IPO투자나 내부통제가 필요한 기업의 컨설팅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성과가 좋아 최근 들어 영입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