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바이오산업의 '조바심' 경계령
입력 17.09.07 07:00|수정 17.09.08 11:23
[Invest Column]
  • 투자은행(IB) 시장에서 SK바이오팜의 상장 전 투자유치, 이른바 프리IPO 가능성이 언급됐다. 내년 IPO 목표를 삼은 SK바이오팜이 최근 주요 외국계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고, 조만간 주관사를 선정해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는 구체적인 얘기가 그 내용이다.

    회사 측은 프리IPO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설명회 때 IPO 계획을 밝히긴 했지만 수면장애 신약에 대한 임상3상 시험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시기 자체는 미정"이라며 "프리IPO는 IB들의 희망사항 같다"는 의견도 전했다. 지난해에도 같은 얘기가 나왔었지만 관련 딜(Deal)은 전혀 진행된 바 없다는 것이다.

    IB들의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관련 보도가 나오는 것이 과연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것일까. 확실한 사업 파트너가 아닌, FI 유치 추진 언급은 장기적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바이오산업 특성을 감안하면 언제든 투자회수(엑시트)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다.

    한 때 SK는 삼성의 바이오산업 영위 지속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관리의 삼성'이 언제부터 돈을 벌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산업을 계속 가져갈까 하는 의문이다. 아무리 삼성의 자금력이 탄탄하다고 하더라도 몇년 간 밑빠진 독에 돈을 계속 쏟아붓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삼성의 인내심은 생각보다 길었다. 의약품위탁생산(CMO)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먼저 상장시키고, 신약개발업체인 바이오에피스는 그 자금을 수혈받았다. 그 결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의약품인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 ‘임랄디’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부터 최종 판매허가 승인을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베네팔리(엔브렐 바이오시밀러), 플릭사비(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이오의약품 3종의 바이오시밀러를 모두 개발한 유일한 회사가 됐다.

    삼성그룹이 지금까지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등 바이오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2조~3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출범 당시 신약보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신약이 아닌, 복제약 개발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삼성은 모험보다는 경험 축적을 선택했다.

    신약개발의 문제는 기업가치 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은 먼저 복제약을 개발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신약 개발을 하겠다는 로드맵을 그렸다. IPO를 앞둔 SK바이오팜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기업가치 산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섣부른 투자유치, 또는 2018년이라는 목표에 고정돼 있는 듯한 IPO를 진행하게 될 경우 시장에 SK그룹이 바이오산업을 추진하는 데 돈이 부족하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먼저 투자 유치나 IPO를 언급하기 보다는 일단 그룹 차원에서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텨 그룹의 지원 의지가 강함을 보여주고, 기업가치를 본격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일말의 성과를 낸 이후에 '퀀텀점프'를 위해 투자자 확보에 나서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과 반드시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SK도 그룹 차원의 장기적·대규모 투자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의 SK는 인내심 측면에선 삼성보다 더 조바심을 내는 모양새다. 당장 뭘 보여줘야 한다든지, 투자 유치를 했다든지 성과 우선주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약업계에선 신약개발을 '로또'라고 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고, 실패할 수 있다. 섣불리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성과를 내기도 전에 다 써버릴 수도 있다. 미래 가치를 미리 끌고 와서 이를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미래의 성공을 장담하는 것도 아니고 보증을 잡을만한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생산과 판매, 이를 통한 이익 창출이 당연시되는 재벌기업이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

    한 고비를 넘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제 미국(나스닥)과 한국(코스피)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SK가 글로벌 바이오산업에서 한 획을 그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바이오산업은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일과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