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물 초장기채 두고 정부-보험사 '엇박자'
입력 17.11.03 07:00|수정 17.11.06 07:20
50년물 국고채 수요조사 실패한 금융당국..."시장 상황 오판" 지적
자산-부채 듀레이션 갭 줄여야 하는 보험사 운용 수익률도 '걱정'
금융사 성토에도 "내년 50년물 발행 참여하라" 딴소리
  • 초장기채 발행을 두고 보험사와 정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을 앞두고 50년물 초장기채에 대한 수요를 확신했던 정부는 보험사의 외면에 직면했다.

    정부는 여전히 내년 발행 예정인 50년물 국고채를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고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보험사들은 최근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앞두고 자산과 부채 듀레이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초장기물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채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5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20년물을 국내 보험사가 흡수했다. 9월 20년물 국고채 발행 물량의 약 75%에 달한다.

    보험사들의 초장기물에 대한 수요는 향후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새롭게 적용하는 신지급여력비율에선 보험 계약의 만기를 단계별로 늘일 예정이라 대응이 불가피하다. 보험부채 듀레이션은 기존 20년에서 올해 25년, 내년까지 30년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른 자산과 부채 간 만기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들은 20년 이상의 초장기채를 집중 매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추진한 50년물 국고채는 보험사의 외면을 받았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10월 국고채 발행 계획에 국고채 50년물을 포함할 목적으로 투자자 수요조사에 나섰다. 기재부는 올 초 연간 1조원 수준의 50년물 국고채를 발행하려 했고, 지난 3월 약 2200억원 발행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보험사를 포함한 실수요자들의 반응은 저조했고 결국 연내 발행은 수포로 돌아갔다. 50년물 발행을 기정 사실로 알고 있던 시장엔 혼란만 더해졌다.

    이번 사례는 정부가 보험업계가 처한 상황을 간파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시급하게 정비된 회계 제도의 보완책으로 초장기채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정작 보험사들은 운용 수익률만 떨어질 뿐 큰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다.

    보험사의 입장에선 50년물 국고채의 금리 수준은 턱없이 낮아 회사의 수익성이 오히려 악화하게 되는 또다른 문제를 떠안게 된다. 50년물 국고채 만기 수익률은 30년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2% 중반에 머물고 있다. 이번 수요조사에서도 정부는 초장기물 금리를 두고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향후 금리 상승을 예상하고 있는 보험사 입장에선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초장기 채권 비중을 늘려야 함에도 보험사들이 50년물 국고채엔 손을 대지 못했던 이유다. 주요 보험사의 자산 운용 수익율은 3~5% 수준이다. 국내 보험사들은 운용자산의 60~80%를 채권에, 나머지 자산은 주식, 대체투자 등에 투자해 1~2%대의 낮은 채권 수익률을 보완하고 있다. 50년물의 낮은 금리를 각오할만큼 현재 보험사의 수익률 사정은 여유롭지 않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지급여력제도에서는 자산운용 전액을 초장기 채권에 투자해도 그 비율을 맞출 수 없는 회사가 다반사"라면서 "3~4%대로 금리를 맞춰주지 않는 이상 초장기 국공채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자 보험사들의 시선을 해외 투자로 향하고 있다. 30년물 이상은 미국채가 금리가 국내보다 더 높아 보험사의 수요가 많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환헤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해외 초장기물 투자가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내년 50년물 국고채 발행에 보험사들의 참여를 권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급진적인 제도 변경에 대해) 정부에 성토해도 내년 국고채 발행에 참여해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업계의 고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