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력으로 中이겨낸 박삼구, 말라가는 그룹 돈줄은?
입력 17.11.24 07:00|수정 17.11.23 19:53
'클래식·中·정치' 총 동원…빈 손으로 물러난 더블스타
그룹재건 희망 이어가지만, 반격 시작한 채권단
계열사 경영 부진 이어져…"과욕 대신 경영 정상화 매진해야"
  • 문화·예술 특히 클래식 분야에서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한국의 메디치가(家)’로 불린다. 박성용 전 회장 시절부터 영재 육성에 공을 들였을 뿐 아니라 적자를 감수하고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의 내한도 추진했다. 후대 박삼구 회장에도 기조가 이어져 “금호와 밥 한번 먹어보지 않은 국내 음악가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금호타이어의 중국 더블스타타이어(이하 더블스타)로의 매각이 무산된 이후 거래 관계자들 사이에선 때아닌 ‘클래식계에서 금호의 영향력’이 회자했다. 한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과 접촉을 피해온 재계 및 관계 인사들도 음악인들이 주선한 모임에는 경계심을 풀고 참석한다”며 “이번 인수전에서도 그룹이 쌓아온 네트워크를 박 회장 개인 목적을 위해 적재적소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우선매수권·상표권’과 함께 박삼구 회장의 외교력이 매각 무산에 공을 세웠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한중우호협회장에 기반한 중국 네트워크, 호남권 정치 인맥도 사실상 총동원됐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이 직접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 더블스타와 공동 인수를 타진했지만, 평판 조회 단계에서 무산되기도 했다. 호남 기반의 초·재선 정치인들이 자문사에까지 거래 향방을 수시로 점검한 점도 언급된다.

    지리한 공방 끝에 더블스타는 1조원을 써내고도 빈손으로 철수했고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 희망을 이어갔다. 다만 승전의 기쁨은 잠시, 돌이켜보면 오히려 잃은 점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관계가 악화된 점이 꼽힌다. 국정감사에서 질타가 이어졌고, 이동걸 신임 회장이 직접 향후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한 만큼 대비책을 갖출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산업은행은 금호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 간 합병을 반대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업계에선 금호홀딩스가 연간 700억원 수준 현금을 꾸준히 창출하는 알짜회사 금호고속을 흡수해 향후 금호타이어 인수 등을 위해 활용할 것으로 점쳐왔다. 금호측은 채권단의 반대에도 합병을 강행할 수 있지만, 기존 차입금을 전액 상환해야 한다. 자금이 빠듯한 상황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룹 중추인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칼자루도 산업은행이 쥐고 있다. 올 초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기존 '자율관리 대상'에서 '심층관리 대상'으로 재분류해 개입에 나서기로 했다. 이 달 회계법인을 통해 실사에 돌입, 회사의 유동성 대응 방안을 점검하고 경영 성과들을 재평가할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공모채 발행 등 외부 조달이 막힌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여신 축소 혹은 상환 요구에 나설 경우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에 욕심을 보이기보다 본업을 다지며 그룹 경쟁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극대화됐다. 건설(금호산업), 타이어(금호타이어), 항공(아시아나) 주축 계열사들이 꾸리는 산업이 호황 국면에 진입했지만 유독 금호계열사들의 실적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다. 더블스타측도 타이어 산업이 호황을 보이는 가운데 유독 금호타이어만 적자에 허덕이는 점을 꾸준히 지적했다.

    한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각종 파킹성 거래와 공익재단을 지배력 강화에 활용하는 등 경영학 교과서 사례란을 가득 채워온 박삼구 회장의 ‘묘수’가 새 정부 감독 강화 기조 하에서도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