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루브리컨츠 상장, SK그룹 배터리 투자 '목돈'마련 신호탄
입력 17.12.07 07:00|수정 17.12.08 09:25
SK이노, 배터리·화학 총 10조원 투자 재원마련 '시동'
자회사 배당 확대해 자금 마련하지만 업황 부침 커
IPO 통한 '목돈' 마련 목적에 무게
  • 11월20일에 열린 SK루브리컨츠 상장을 위한 킥오프 미팅에는 회사 및 주관사 관계자 5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지동섭 SK루브리컨츠 사장 등 경영진이 직접 각 주관사 실무진을 독려하며 상장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에게 보고된 상장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이번에는 차진석 SK이노베이션 CFO가 직을 걸고서라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성공을 자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SK루브리컨츠가 내년 5~6월을 목표로 상장에 재도전하고 있다. 삼수 도전이다. 지난 2015년 상장을 위해 선정한 증권사들이 그대로 주관사를 맡았다. 대표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공동주관사는 미래에셋대우와 씨티클로벌마켓증권, 크레디트스위스가 참여한다.

  • SK루브리컨츠의 상장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선 '명분'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SK루브리컨츠 자체로는 시급히 상장을 추진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활기유 사업은 안정적인 수익창출원이지만 성장성은 제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지난 2014년 스페인 공장 투자 이후 회사의 대규모 설비투자도 일단락됐다. 지동섭 SK루브리컨츠 사장도 "미국에 (추가) 공장을 짓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5~7년 뒤에나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해 공격적인 사세 확장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했다.

    자체 투자 계획이 없다 보니 올해 SK루브리컨츠는 보유현금 대부분을 모회사 SK이노베이션에 배당으로 지급했다. 올해엔 SK이노베이션에 3322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전년(252억원) 대비 10배를 훌쩍 넘는다. 이로 인해 SK루브리컨츠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7477억원에서 올 9월 기준 3000억대 수준까지 줄었다.

    지난 2015년엔 석유화학 업황이 악화해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해지며 SK루브리컨츠의 상장과 매각을 동시에 검토했지만, 지금은 호황을 맞아 어느 때보다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를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해보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해명에도 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인 배터리 분야 진입을 위한 재원 마련 목적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오너가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주도하는 신사업인 만큼 단기간 재원 확보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월 CEO간담회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 육성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밝혔다. 2020년까지 화학과 배터리 분야에 총 10조원을 투자하고, 내년엔 최대 3조원을 투자하겠다 밝혔다. 향후 3년간 배터리설비를 10GW 수준까지 확장한 뒤, 2025년엔 세계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지난 11월엔 헝가리 배터리 공장에 2022년까지 총 8400억원을 쏟으며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업계에선 배터리 분야에만 2020년까지 최소 연간 5000억원씩 투자해 1조5000억~2조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SK이노베이션 자체 현금확보가 시급하다.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 주력 자회사들이 호황을 맞아 연결기준으론 8조원 수준의 두둑한 곳간을 보유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이 사용할 수 있는 개별기준 현금성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시장성 있는 유가증권 등 포함)은 1조원 남짓이다.

    주력 자회사의 배당을 통해 곳간을 꾸준히 늘릴 수 있지만 석유화학업 특성상 변동성이 크다. SK루브리컨츠도 내년 이후 경쟁사들의 설비 가동이 본격화하면서 올해 수준의 실적과 배당여력을 꾸준히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자체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안정적 재원확보를 위해 일정 정도의 '목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윤활기유 사업 업황이 올해가 '고점'일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데다 시장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상장 시점으론 최적기인 것 같다"며 "내년도 SK종합화학 등 비상장사들의 추가 상장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