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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금 회장이 코웨이 재인수를 추진한다"가 뉴스로 부각됐다. 주가는 크게 출렁거렸고 코웨이ㆍ웅진 양쪽으로 조회 공시도 이어졌다.
국내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어차피 안될 거래라고 판단해서 이번 해프닝의 '숨은 목적'을 유추하는 이들이 많다.
◆"1500만원으로 시가 10억원 아파트 사겠다" 수준
우선 자금상황. 누군가 자기 계좌에 1500만원이 있는데 이 돈을 가지고 시가 10억원이 넘는 서울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외부자문을 구하고 은행과 투자자를 찾아간다면 반응은? 현재 웅진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코웨이 주가(9만원~10만원대)를 감안한 시가총액은 약 7조5000억원. 최대주주 MBK파트너스 펀드 보유주식(26.8%) 시가는 2조원대. 경영권 담보 지분인데다 코웨이의 높은 배당성향 등을 감안하면 매각가 3조원대도 거론된다. 실제로 2015년 9월 골드만삭스 주관으로 매각을 태핑하고 CJ그룹ㆍ어피니티ㆍ칼라일 등이 인수를 검토할 당시 거론된 가격이 이 수준이었다.
웅진그룹의 현재 주력사는 웅진과 웅진씽크빅ㆍ북센 및 기타 계열사 정도다. 이들의 현금성 자산은 지주회사 웅진이 170억원 정도, 북센이 13억원이다. 그나마 웅진씽크빅의 덩치가 큰데 시가총액 2500억원 가량이다. 웅진이 보유한 경영권 지분 (24.3%)의 시가가 600억원 가량이고 프리미엄을 붙여 이를 매각한다 해도 손에 쥘 현금은 많아야 1000억원 정도다.
이런 현금으로 어드바이저를 고용하고,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본들 시장에서 3조원을 마련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인수의지와는 별개 문제다.
우선매수권도 거론되지만 실효성이 없다.
가장 강력한 수준의 우선매수권(Right of first refusal)이 윤석금 회장에게 있다고 할 경우. 매각 측이 경쟁입찰을 진행하고 대기업 또는 해외 사모펀드가 3조원에 인수 의사를 밝혔다고 하면. 이때부터 웅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이 정해준 3조원이란 가격에 코웨이를 사거나, 아니면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3조원에 우선매수권을 행사사겠다"고 선언해본들 정해진 기일까지 계약금 3000억원을 입금해야 한다. 그뒤 몇개월까지 잔금 2조7000억원을 입금하지 못하면 계약금을 날리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선매수권이 일신전속권(一身專屬權)이냐, 아니면 회사에 귀속되어 있느냐 등의 논란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일각에서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처럼 자금을 모으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대상회사의 크기와 동원가능한 현금 수준,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각자의 성격이 다르다. 인수도 하기 전에 "코웨이가 이익을 잘 내니까 그 돈을 활용하면 된다"는 발상은 인수할 회사의 '지분 담보'가 아닌, '자산 담보'를 가정하는 성격이다. 자칫 2001년 건설회사 신한 M&A처럼 '배임 성격의 LBO인수' 논란이 일수도 있다.
◆윤석금 회장,2012년 법정관리 악용하려다 법원 판결로 매각
남은 사안도 있다. 이번 시도를 '실패한 창업자의 아름다운 재기 시도'로 바라볼지, 아니면 '부도덕했던 오너의 버리지 못한 욕심'으로 바라볼지 여부다.
코웨이는 지난 2012년 2월부터 그 해 말까지 국내 투자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매각됐다.
일단 매각의 원인부터 오너와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한 재무부담 가중이었다. 한때 웅진그룹은 재계 30위를 넘나들었지만 '건설 ㆍ태양광ㆍ저축은행'이라는 최악의 업종 M&A를 골라서 단행,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었다. 2007년 극동건설을 론스타에서 6600억원에 인수한 후 건설경기 불황에 4000억원을 더 집어넣었다. 이러면서 2010년부터는 태양광 사업에 1조 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계획하다 업황저하를 맞이했다. 웅진캐피탈 사모펀드(PEF)를 통해 기관(LP)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수한 서울저축은행은 저축은행 사태와 맞물려 그룹 붕괴의 마지막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캐시카우였던 웅진코웨이 매각을 결정했지만 이때부터 웅진과 윤석금 회장은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다.
2012년 7월. 처음에는 GS리테일에 판다고 했다가 며칠 만에 말을 바꿔 윤석금 회장이 임원들에게 '웅진코웨이를 안 팔겠다"고 했다. 또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당시 블라인드 펀드도 없는 KTB PE를 끌여들이고 웅진그룹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구조를 짰다. 이조차 뜻대로 안되자 결국 MBK파트너스와 주당 5만원, 총 1조940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한게 8월16일이다. 숱한 대기업과 인수후보들이 윤석금 회장의 갈지자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놓고는 불과 한달 뒤인 9월26일. 이번에는 채권단ㆍ투자자ㆍ주주 그리고 코웨이 인수자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웅진홀딩스ㆍ극동건설 법정관리를 신청해 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법정관리 신청일 하루 전까지도 웅진은 금융권에 '곧 만기도래할 어음을 갚겠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죽하면 당시 법정관리 신청을 담당한 법무법인 태평양 내에서도 담당자들 이외에는 사실을 몰라 당황했다는 언급이 나올 정도였다.
더 문제는 법정관리 신청의 의도였다.
웅진은 "채권자보호와 기업회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윤석금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머리를 숙였으나 실제 내용은 전혀 달랐다.
당시 인베스트조선이 단독입수했던 웅진의 '회생개시 신청서' 를 보면 2018년까지 채무를 상환하는 대신, 시장과 약속한 웅진코웨이 연내 매각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법원에 제안했다. 대주주인 윤석금 회장의 지분도 일절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계획했다. 반면 채무자들에게는 6년간 이자를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제시했다.
시장은 이런 제안에 경악을 금지 못했다. 통합 도산법의 DIP제도를 악용한 결정판으로 평가됐다. 주요 증권사들과 투자자는 윤석금 회장과 웅진홀딩스 고소 검토에 나섰다. 다행히 법원 판결로 그해 말 코웨이 매각과 채무정리가 강제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코웨이는 '웅진'이란 이름을 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재평가받아야 한다며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기 이르렀다.
이런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5년 만에 윤 회장이 '창업자의 재기'라는 명분으로 코웨이 재인수를 거론하는 형국이다.
◆코웨이 인수 시도하다가 안되면 새 회사 창업?
코웨이 매각에서는 일반적으로 M&A에 포함되는 '경업금지' (競業禁止ㆍProhibition of competitive transaction), 즉 경쟁자로서 동종업종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5년짜리인데 내년 1월이면 금지기간이 만료가 된다.
이에 따라 윤석금 회장은 이른바 맨손으로 일궜던 '정수기 렌탈' 시장에 다시 들어올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를 목전에 앞둔 최근 들어 윤석금 회장의 코웨이 재인수 시도가 뉴스로 부각됐다.
향후 몇달간 윤석금 회장 측이 여러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시로 어드바이저와 상의하고 자금을 모으러 다니는 모습이 부각 받을 수도 있다. 조회공시 답변에 대한 재응답을 통해 관심이 뜸하다 싶을 때마다 부각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다가 이런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정수기 렌탈 시장을 개척한 창업자 윤석금 회장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 애석하게 인수가 어렵다"라고 평가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윤석금 회장이 코웨이를 대신할 브랜드로 새롭게 렌탈 사업에 진출하여 기대에 부응하겠다"라고 선언할 수 있지 않을까. 최고의 마케팅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처음부터 의도된 움직인지, 아닌지는 가늠하기 어렵겠지만.
이 와중에 애꿏은 코웨이 주가는 박살이 났다.
'웅진'과 '윤석금'이란 이름을 뗀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옛 오너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주가는 19일, 20일 양일간 10% 가까이 빠졌다. 주주게시판에는 이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에 대한 두려움을 표명하는 글들이 보인다. 언론에서 이 사안을 다시 다룰 때마다 앞으로 얼마나 주가가 더 빠질지도 알 수 없다. 웅진 당시의 '악몽'을 기억하는 임직원들은 윤석금 회장의 복귀 시도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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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12월 26일 11:38 게재]
웅진그룹 보유 현금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거래
5년전 기습 법정관리에 채권자 무시하다 법원이 매각 결정
인수 시도 주목받다가 '새 회사' 세우면 마케팅 효과 누릴 수도
5년전 기습 법정관리에 채권자 무시하다 법원이 매각 결정
인수 시도 주목받다가 '새 회사' 세우면 마케팅 효과 누릴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