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점 논쟁 본격화…전문가 '옥석 가리기'도 시작
입력 18.01.04 07:00|수정 18.01.05 09:59
지난해 반도체 호황 속 외국계 증권사 중심 '신중론' 제기
"삼성전자 주식 팔 때" 모건스탠리發 '쇼크' 회자
올해 업황 예상 관련 치열한 논쟁 전망
비관론은 '가격', 낙관론은 '새로운 수요' 주장
  • 지난해 반도체 산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경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하자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 파티가 언제 끝날까?”로 쏠리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일찌감치 경고등을 켠 리포트를 내놨고, 이에 시장이 크게 반응하기도 했다.

    올해엔 반도체 ‘고점’을 둔 논쟁이 좀 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까지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 대다수의 애널리스트들도 하반기 혹은 2019년 업황을 두곤 제 목소리를 낼 조짐이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실적 부침을 겪은 만큼 이른바 업계 전문가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도 관심거리다.

    2017년 반도체 산업 업황을 둔 논쟁은 주로 외국계 증권사에서 촉발됐다. 지난해 2월 “SK하이닉스의 2018년 영업이익이 2017년 대비 36% 급락할 것”이란 보고서를 발간한 UBS는 그해 7월 기존 주장을 폐기하고 '반성문'을 냈다. 11월엔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증권사들이 잇따라 삼성전자에 대해 ‘비중 축소’ 의견을 내면서 고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가 나온 당일엔 삼성전자 주가가 5%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좀처럼 ‘다른 의견’을 찾기 어려운 국내 증권가와 달리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으로 시장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있다. 한 국내 증권사 IT담당 연구원은 “모건스탠리 논리에 동의하느냐와 별개로 화끈한 제목(지금은 쉬어갈 때; Time for pause)으로 '지금 팔 때'라고 직설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부러운 건 사실”이라며 “마케팅 측면에서 대장주 삼성전자를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라고 전했다.

    리포트 내용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데다가 이미 알려진 내용의 확대 재생산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다.

    모건스탠리가 D램 분야 선두 업체 삼성전자에 ‘매도’ 의견을 내면서 동시에 D램 3위권 업체인 마이크론의 목표주가를 올린 점(39달러→55달러)은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다. 모건스탠리 내에서 국내 법인과 본사 간 반도체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엇갈린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등 국내 IT 시장은 션 킴(Shawn Kim) 한국 법인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반면 마이크론 및 미국 IT시장에 관련된 리서치는 조셉 무어(Joseph Moore)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하락을 전망했던 다른 외국계 증권사 IT 애널리스트도 익명을 전제로 “예상 보다 D램 가격 하락세가 크지 않다”며 “다만 최근 중국에서 D램 가격에 대한 통제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만큼 조금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의견을 수정하기도 했다.

  • 업계에선 올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반도체 사이클을 둔 논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미 국내에서도 2018년 하반기 업황을 두고 애널리스트마다 시각이 갈리기 시작했다. ‘비관론’은 가격과 수급 현황 등 전통적 논리에 집중한 반면 ‘낙관론’은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수요 창출 기회에 비중을 둔다.

    삼성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시장이 가격환경에 드리우는 리스크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2018년 중반 이후 반도체 시황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클라우드 등 데이터 기반 컴퓨팅 확대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2018년 중반 이후 낸드 분야에서 공급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해 정 반대 입장에 섰다.

    이처럼 본격적인 논쟁이 가열되며 반도체 전문가 '옥석 가리기'의 원년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낸드 가격은 조금씩 하락하고 주요 수요처였던 스마트폰이 예년만큼 팔리지 않는 데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업체들이 D램 증설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며 "'숫자'들은 이미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서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역량은 이를 해석하는 주관과 기술변화를 읽는 통찰력에 따라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