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ㆍ블록체인 규제 풍선효과...코스닥으로?
입력 18.01.25 07:00|수정 18.01.26 18:35
기술투자 부문 움직임은 제한적
가상화폐 테마주는 주가 널뛰어
정부 주도 유동성 확대ㆍ코스닥 붐
또 다른 버블 붕괴 불러올까 우려
  •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에는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큰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비트코인 창설자 나카모토 사토시나 일련의 '사이퍼 펑크'(Cypherpunk) 그룹이 암호화폐에 열을 올리던 시기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와 겹친다. 10곳 남짓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부도덕과 탐욕이 세계 경제 공황을 야기할 뻔한 상황을 목도했다. 이들이 받아온 엄청난 수수료 수익,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수천억대 보너스에 대한 혐오감이 넘쳐났다.

    한때 반짝 주목 받다 상승세가 주춤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작년 급상승할 때도 비슷한 평가들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정치불안, 브렉시트로 야기된 통합 유럽의 분리 등에서 불안을 느꼈다. 국내에서는 희망 없는 미래에 절규하는 'N포세대'의 패배감이 특유의 투기수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되레 '신기술'에 대한 판단이 가장 빠른 투자 부문의 가상화폐 관련 움직임은 제한적이었다.

    덩치큰 해외 벤처투자자들은 ICO(Initial coin offering) 형태로 가상화폐 자체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래소 투자를 병행됐다. 국내에서는 거래소 투자가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거래소 설립에 참여한 기업 주식을 사들여 수익을 올린 곳도 있다.

    그나마 사모펀드(PEF)처럼 큰 투자자들 사이에 오간 투자 제안 건도 ▲1위 거래소 '빗썸' 지분매각 또는 프리IPO투자 ▲3대 거래소 중 하나인 코빗 경영권 매각 거래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코빗은 김정주 회장의 넥슨이 912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이런 제안들조차 가상화폐 수요 폭발로 거래소들이 짭짤한 현금을 손에 쥐기 시작한 작년 하반부에 본격화됐다.

    지금은 이런 움직임도 크게 줄었다. 가상화폐 테마주로 꼽힌 기업들 주가는 오를만큼 올랐고 일찌감치 지분을 매입했던 투자자들 상당수는 회수를 끝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들어서야 이더리움 등 일부 가상화폐에 전문투자하는 벤처회사 등이 생겨나는 추세다.

    오히려 투자를 하고 싶어도 사행성 짙은 투기수요를 잡겠다는 서슬퍼런 정부 방침에 되레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일부 야당의원 지적으로 모태펀드 출자 벤처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400억원을 투자했다고 알려지자 중소기업부 장관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이들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

    자연스레 분위기는 "가상화폐는 불안하고, 이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이지만,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살려야 한다"라는 편리한(?) 취사선택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일련의 정부 당국자들이 내놓는 발언과 움직임들이 모두 이 논리에 기반한다. 그러나 가상화폐 홍역을 좀 더 일찍 겪은 해외에서는 이 논리가 한때 대세로 굳어졌다가 "블록체인 기술이 가상화폐와 분리해 서 생각하기 어렵다"라는 비판을 맞이하기도 했다.

  • 이런 와중에 영리한 기업과 몇몇 금융회사들만이 이런 흐름을 본인들 입맞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즉 가상화폐ㆍ블록체인 테마로 그들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 미래성장성을 대체하고 주주와 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쓰고 있다.

    최근 코닥(Eastman Kodak)이 "코닥코인이라는 새 암호화폐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주가가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 대 표적인 사례. 알려진대로 코닥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실패한 기업의 표본'으로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회사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서 정부가 주도한 코스닥 활성화 방안과 맞물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투기수요 과다는 그만큼 시중의 자금유동성이 그만큼 넘쳐단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리고 정부는 부동산 투자수요는 막고 , 가상화폐 투기는 때려잡겠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대대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 출자를 기점으로 민간자금까지 합쳐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벤처 투자 시장으로 쏠릴 기세다.

    결국 벤처투자자들로서는 투자금 소진을 위해 다수의 신사업과 기술력 있는 기업 발굴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상당부분은 '가상화폐'라는 이름을 뗀 '블록체인'관련 기업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코스닥 시장 부활을 일궈낸 '바이오'를 대체할 '포스트 바이오'로 블록체인이 주목받을 수 있다는 의미.

    문제는 이렇게 마련된 코스닥 활성화가 또 다른 버블, 그것도 '정부가 허용하고 장려한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인에 대한 평등한 개방형'으로 설계된 가상화폐ㆍ블록체인 기술은 대형 금융회사 등에서 '폐쇄형 블록 체인'형태로 연구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금에 기반한 기술력 확보, 중장기적인 밑그림과 당장은 현금이 나오지 않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가상화폐 광풍과 함께 현재 국내에서 이뤄지는 개발과 투자움직임은 "노원구청이 전문기업과 가상화폐를 개발했다" 라고 발표하는 수준이다. 비슷한 형태로 앞으로 소규모 벤처투자금을 받고 완화된 상장조건에 힘입어 단기간에 코스닥에 등장할 '블록체인 테마기업'들이 보여줄 기술력과 성장성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는 코스닥에서 벌어질 '블록체인 버블'의 붕괴다. 수년뒤 벌어질지 모를 일이지만 귀책사유는 자연스레 투자붐을 일으킨 정부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