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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생일 잔치 분위기는 아니었다.
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아시아나항공은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간담회를 며칠 앞두고 오너 스캔들이 터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간담회 시작은 순조로웠다. 아시아나항공 홍보팀은 지난 30년간의 영상과 사진을 묶어 회사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어 모두발언에서 김수천 사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성장 과정을 한 해씩 짚으며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이후 담당 임원이 나와 현재의 재무구조와 향후 목표를 설명했다.
물론 중요한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기다렸던 내용은 아니었다. 모든 관심은 박삼구 회장에 쏠려 있었다. 회사는 박 회장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질의응답 시간이 돼서야 박 회장의 이름이 들렸다.
첫 질문의 기회를 얻은 한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박삼구 회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 보도가 있었고, 보도 이후 여전히 어플리케이션 앱에서 추가적인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회사의 향후 대책 궁금하다"
지난 주말에 공론화 된 '그 사건'에 대해 경영진이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예상 가능한 질문이었음에도 회사 측은 기자들의 질문을 막았다. 사회자는 "30주년과 관련한 자리인만큼 회사의 성장과 미래에 대한 질문을 부탁한다"며 다른 질문을 받으려 했다. 이에 김수천 사장은 피하지 않고 "깊이 살펴볼 계획이니 시간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사회자의 요청에도 박삼구 회장 관련 질문은 이어졌다. 또 다른 기자는 보도 이후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전문경영입 영입과 노조 파업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사회자는 이번에도 역시 질문의 방향을 바꿔줄 것을 부탁했다.
사회자의 바람과는 달리 또 한 번 경영진을 불편하게 할 질문이 나왔다. 자회사 에어부산의 승무원들이 높은 업무 강도로 기내에서 실신하고 있는 점에 대해 근무 여건 개선을 고려하고 있는 지 물었다. 그리고는 "30주년 행사 관련 질문만 받겠다고 하는데, 오늘 일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30년간 지나온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자의 발언을 꼬집었다.
김 사장은 세간의 우려는 잘 알고 있다면서도 뚜렷한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어떤 얘길 하더라도 성급한 판단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지켜봐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안그래도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년간 겪은 부침에 대해서 성장성과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의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오너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생일 파티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한 기자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라면 회사 측에서 내년엔 기자간담회를 안 한다고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쉬운 점은 회사의 대응이다. 앞선 보도에 대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오해가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될 것이고,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시정할 것을 약속하면 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30주년' 기념식은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이날 한 경영진은 미국 캘리포니아 노선 중단과 관련해서는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악의 상황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이 국내에서도 확산돼 가는 이 때 아시아나항공은 정작 오너리스크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을 수 있다는 점은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이날 생일 잔치에 그룹 오너 일가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에 실패하면서, 이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썰렁했다. 박 회장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중 한 명이다. 거기에 작년말 아시아나항공 사장 선임이 유력했던 아들 박세창 사장은 임원인사에서 배제 돼 그룹 3세 경영도 미뤄진 상황이다. 이제는 "기존 경영진을 쇄신하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라"는 요구에 직면한 아시아나항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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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2월 06일 17:22 게재]
서른번째 생일잔치 즐기지 못한 아시아나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