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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 이후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그 자체다. 누가 회사를 이끌지에 그룹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현민 갑질' 사태가 불거진 지 열흘만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서면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제가 된 두 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한항공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이 그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은 매우 짧고, 방법은 매우 편리했다.
일반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기업은 새 수장을 뽑는데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인다. 이사회에서 자격에 맞는 대상을 선정하고,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이를 심사한다. 이후 이사회와 주주총최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임한다. 특수한 상황엔 이 기간을 압축할 수 있지만 인사 논란을 우려해 사전 검증에 신경 쓴다.
조양호 회장은 이 과정을 모두 생략했다. 전문경영인 선정 시간은 단 열흘이 걸렸고, 아들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은 그대로 둔 채 부회장직을 신설해 명목상 조 사장 위에 최종 결정권자가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혔느냐도 논란이다. 고민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뻔한 인사를 앉혔다는 점은 역풍으로 돌아왔다.
전문경영인으로 지명된 석태수 한진칼 사장은 대한항공 내부에선 조 회장의 오른팔로 불린다. 석 사장은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미주지역 본부장 상무, 한진 대표이사를 거쳐 지난해까지 한진해운 사장을 맡았다. 한진해운 청산과 진에어 기업공개(IPO) 등 그룹의 핵심 사안을 직접 이끌어 조 회장의 '복심'으로도 통한다.
석 사장의 보임은 전문경영인제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과는 별개로 경영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 석 사장의 그룹 내 역할을 고려하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기업의 역량을 이끌어내야 하는 전문경영인 역할을 온전히 소화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대한항공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오너일가가 아닌 인사가 대한항공 경영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심이택 전 사장을 시작으로 이종희 전 사장, 지창훈 전 사장이 대한항공 경영을 총괄한 바 있다. 지창훈 전 사장은 7년간 수장의 자리를 지키다 당시 조원태 총괄부사장이 사장으로 오르면서 사임했다. 1999년부터 17년간 이어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3세 승계 작업으로 멈춰버렸다.
여론은 대한항공의 국적기 자격 박탈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국적기’ 명칭에 대한 가타부타가 있지만, 그것을 떠나 재벌 3세들의 만행과 그에 대한 조양호 회장의 조치는 가뜩이나 떨어진 대한항공 기업가치를 더 끌어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여론을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허무하게 써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대한항공 내부에선 "석태수 사장은 (사실상) 조양호 회장이다"라고 단언한다. 누구보다 대한항공의 변화를 바랐던 직원들은 누구보다 이번 조치에 가장 실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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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4월 23일 16:40 게재]
과정도 명분도 없는, 대한항공 오너만을 위한 전문경영인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