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확충 난기류에 국내로 회항한 대한항공
입력 18.06.21 07:00|수정 18.06.22 14:08
하반기 만기도래 채권 7200억원
이달 상환 자금만 2000억원 규모
글로벌 시장 변동성...창구 막혀
국내선 '오너리스크'로 큰 타격
차환 실패 땐 부채비율 상승
내년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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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항공의 부채비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증시가 불안정해지면서 예정됐던 해외 자본확충 계획이 취소됐다. 회사는 급하게 방향을 바꿔 국내서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하기로 했고, 국내 증권사의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급한 불을 껐다. 올 하반기까지 상환 일정이 줄지어 있어 오너일가로 곤경에 빠진 대한항공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 5200억 규모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만기 코 앞...'발등에 불'

    올 초까지 대한항공에 대한 투자심리는 우호적이었다. 대한항공의 낮은 신용등급(BBB+)에도 지난 4월 진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엔 목표금액의 4배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올해 여행 수요 증가로 실적이 개선됐고,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하반기 상환 일정이 몰려있는 가운데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회사 측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올해 말까지 대한항공이 마련해야 할 자금은 약 7200억원이다. 당장 이달 2000억원 규모 상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2013년 발행한 영구채의 콜옵션 행사 기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스텝업 조항으로 금리는 대폭 올라가게 된다. 이 건이 마무리되면 오는 8월엔 20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를, 11월엔 또 다른 영구채 콜옵션 행사에 대비해 약 32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외국계 주관사를 선정해 글로벌 투자자와 접촉을 시도했다. 해외 영구채를 발행해 기존 발행분을 차환하려는 목적이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이탈렉시트)와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하며 대한항공은 원하는 발행조건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해 대한항공이 해외에서 영구채를 발행할 당시의 이자율은 6.88%였지만 올해는 8%를 전후하는 금리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결국 외화 영구채 발행을 접었다.

    해외 시장이 막히면서 대한항공의 발등에도 불이 붙었다. 그동안 유상증자와 영구채로 낮춰 온 부채비율이 다시 상승할 위기에 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올해 53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자체 유보금으로 대응할 시 회사의 부채비율은 660%로 다시 증가한다. 현재 부채비율보다 108%포인트 올라간다.

    660%라는 부채비율만 보면 회사의 재무 상황이 당장 위험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항공사들의 부채 비율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운용리스 비중이 높지 않아 다른 항공사에 비해 타격은 적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부채비율은 소폭 증가할 것으로 투자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6년 이전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부채 비율이 1000%를 넘어갈 시 자금을 상환하겠다는 계약 조건을 붙인 바 있어 이같은 상황이 달갑지 않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갈 경우 6200억원 규모 회사채를 즉시 상환해야 하며, 다른 채권들도 크로스디폴트(동반채무불이행) 조항에 따라 조기 상환 압박을 가할 수 있다.

    ◇ "펀더멘털만 괜찮으면 OK"하던 국내 기관도…뒤바뀐 투심

    상환일이 다가오자 대한항공은 국내 자본시장으로 선회해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다. 비우량 등급을 보유한 대한항공으로선 국내 시장에서도 금리를 낮추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의 시장 지위에 힘입어 조달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최대 항공사이지만 최근 대한항공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번 영구채 발행에서도 국내 기관투자자의 입장 변화가 감지된 점은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수년째 지적됐던 한진그룹 일가의 행태에도 그동안 국내 기관투자자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태 당시에도 국내 한 연기금 투자자는 "오너 일가의 문제로 주식을 사거나 팔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오너리스크로 인한 시장 평판이 악화하며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자 해당 연기금은 결국 보유 주식 대부분을 매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진그룹 일가의 오너리스크는 기업가치에 큰 타격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쟁 항공 4개사의 합산 시가총액이 연초 이후 24% 증가한 반면, 대한항공은 같은 기간 9%가량 감소했다.

    국민연금은 주식을 매도하진 않았지만 오너 일가를 견제하는 모습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행태와 밀수·탈세 혐의를 문제 삼아 회사 측에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경영진 면담을 요청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대해 공개서한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이 해외에서 국내로 선회한 이번 결정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 키움증권 등 주관사들은 대한항공이 이달 발행하는 2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총액 인수하고 이후 재판매 할 예정이다.

    연말까지 차입금 상환이 줄이어 대기하고 있는 탓에 대한항공의 고군분투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의 불안정성이 이어지며 조달 가능 창구가 좁아지고 있다. 총수 일가의 비도덕적 행태로 인한 여파가 확대하고 있어 국내 투자자 설득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구채 발행 역시 사모 형식으로 발행하기로 하면서 공모 시장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