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가는 NBA 선수…기폭제 된 'VC 투자자' 코비
입력 18.09.28 07:00|수정 18.10.01 09:32
  • 국내 대기업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했던 A씨. 잠시 회사를 떠나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밟고 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앉은 키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쉬는 시간에 보니 미국 NBA 농구 선수인 자자 파출리아(Zaza Pachulia)였다. A씨는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냐고 물어봤고 파출리아는 흔쾌히 응해줬다.

    파출리아는 작년 NBA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센터였다. A급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팀 우승에 기여했고 워리어스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선수다. 올해부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선수로 뛸 예정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은 또 한 명의 NBA 스타를 기다리고 있다. 현역 최고 슈팅가드로 꼽히는 보스턴 셀틱스의 카이리 어빙(Kyrie Irving)이다. 어빙은 최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육 프로그램인 "Crossover Into Business"에 지원했다. 이 수업은 프로 운동선수들이 현역 생활 중 혹은 은퇴 후 하게 될 사업 활동을 보다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역 NBA 선수가 MBA 과정을 밟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여러 이유 있겠지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투자자'로 나선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의 성공 때문이라고 한다.

    LA 레이커스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16년 은퇴 후 제 2의 삶을 월스트리트에서 펼치고 있다. 브라이언트는 사업가 겸 투자자인 제프 스티벨과 벤처캐피탈(VC) ‘브라이언트 스티벨(Bryant Stibel)’을 설립했다. 그해 1억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펀드를 조성했다고 밝혔는데 외부 조달 없이 순수 자비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이언트 스티벨의 투자 키워드는 IT, 그리고 스타트업이다. 중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업체 ‘리걸줌(LegalZoom)’, 텔레마케팅 소프트웨어기업 ‘링DNA(RingDNA)’가 투자 대상들이었다. 또 스포츠 미디어 웹사이트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The Players Tribune)’, 비디오게임 개발사 ‘스코플리(Scopely)’, 가정용 스마트 주스기 개발사 ‘주세로(Juicero)’ 등 총 15개 기업에도 투자했다.

    현재 브라이언트는 투자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금도 스포츠선수 출신 가운데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최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조차도 농구 선수가 전 세계 금융전문가들이 모인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기업에 투자를 해 대박까지 낸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라이언트가 이처럼 성공한 배경 중 하나는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업계 경험이 있는 전문가와 손을 잡은 점도 주효했다. 스티벨은 스타트업 창업과 기업 경영, 매각 등 다양한 투자 경험을 지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철학이다.

    브라이언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은퇴 후) 지금 나에게 가장 즐겁고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도록 돕는 일이다”라며 “나는 훨씬 더 많은 기업이 지속되길 바라고, 그들이 얻은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가능성 있는 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다.

    국내 VC들의 기업공개(IPO)가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벤처투자자금을 충분하게 지원할 개연성이 커졌고 지금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장 최적기로 여기는 셈이다. 돈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국내 VC는 어떤 투자 철학을 갖고 있는지, 투자 철학 자체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VC업계 종사자들이 은퇴한 농구 선수의 생각도 한번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