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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M&A) 시장에 게임회사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소규모 M&A를 넘어서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 M&A로 판이 커졌다. 생존을 위해선 M&A가 필수적이다 보니, 앞으론 대기업보단 게임업계에서 조 단위 거래가 더 많이 눈에 띌 거란 전망도 나온다.
가장 최근에 완료된 대규모 크로스보더 거래 중 하나도 게임회사 인수였다. 지난달 초 '검은사막'으로 잘 알려진 펄어비스가 '이브온라인' 개발사인 아이슬란드 게임업체 CCP게임즈 지분 100%를 인수한 것이다. 계약체결금액은 2억2500만 달러지만, 2019년과 2020년 성과에 따라 연도별로 1억달러 한도 추가 지급금을 지급키로 했다. 최대 5000억여원에 달하는 M&A를 단행한 셈이다. 도이치증권이 주관을 맡았다.
이브온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주 공상과학(SF)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서비스한지 1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3만명 안팎의 핵심 유저들이 매달 15달러를 지불하고 게임을 즐기고 있다. CCP게임즈는 3곳의 스튜디오를 통해 게임 개발에 주력하고, 모회사 펄어비스가 이브온라인 등 개발된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구조다.
CCP게임즈는 현재 이브온라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총싸움 게임(FPS) '프로젝트 리전'과 역시 이브온라인과 연계되는 모바일 게임 '프로젝트 갤럭시'를 개발 중이다. 개발 중인 게임은 가치 평가가 어렵다보니, 추후 실적에 따른 추가 금액 지불 계약을 맺은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CCP게임즈가 이브온라인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내놓은 온라인 FPS '더스트114'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3년만인 2016년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게임산업이 워낙 급변하다 보니 추후 실적에 따라 금액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며 "펄어비스에서도 추가 지급금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1조원에 가까운 M&A도 성사됐다. 넷마블은 미국 게임사 카밤과 종속기업 4개를 85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만큼 M&A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이다. 글로벌 시장에선 2016년 중국의 텐센트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핀란드의 게임 개발사를 86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글로벌 게임업체 M&A의 경우 거래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삼정KPMG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지난 5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게임회사의 건당 M&A 거래 규모는 평균 약 2억 달러로 집계되며 주로 동종 업계에서의 소규모 게임 제작사의 인수가 주를 이뤘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게임 산업에서의 M&A 는 다수의 게임 제작사를 인수하여 게임 라인업을 다양화하거나 확대하려는 니즈가 크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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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는 이유는 자체 성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존의 M&A처럼 경영지배권을 확보해 조직을 통합하고 운용효율성을 높이려는 M&A 보다는 게임 퍼블리셔부터 제작사까지 수직계열화하는 동시에 게임 라인업을 다양화하는 목적이 크다. 게임 산업의 부침이 심하다 보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실적이 언제 꺾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신규게임이 출시되면 100개 중 성공할 확률은 2개 정도에 불과하다"라며 "게임사 경영자의 핵심역량은 게임 개발이 아니라 M&A를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성공 스토리에도 M&A가 있었다. 넥슨은 2008년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을 3800억원에 인수했다. 네오플은 위메프 창업자인 허민 대표가 만든 회사로 이 M&A 한방으로 넥슨이 2008년 이후 벌어들인 금액만 10조원이 넘는다. 이 M&A가 없었으면 넥슨도 휘청거렸을 것이란 게 게임 업계 평가다.
지난해 글로벌 최고 히트 게임 중 하나인 '플레이어 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블루홀 역시 연초 게임 제작사 '레드사하라'를 인수한 데 이어 자회사 펍지를 통해 미국 온라인 게임 서비스 개발업체인 매드글로리를 사들이기도 했다.
M&A 전략도 고도화하고 있다. 게임사들이 빅데이터 정보가 풍부하다 보니 이를 활용해 기업가치 산정에 나선다. 데이터 솔루션을 활용해 유저 잔존율 등을 계량화해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이에 맞춰서 옵션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게임사 M&A를 위한 전문 브로커나 에이전트 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IB들에서도 게임사 딜을 한 인력 영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
M&A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공개(IPO)도 덩달아 활발해졌다. M&A를 진행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고 주식스왑 등을 진행하기 위해선 IPO는 필수조건이 됐다. 카카오게임즈, SNK, 엔드림, 베스파 등 앞으로 나올 게임사 IPO 규모만 수조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들의 상장이유는 자금 조달 후 M&A 수요 때문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M&A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IPO를 다들 서두르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게임사끼리 M&A 경쟁도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사 의장들의 돈독한 관계를 일컬어 '그들만의 리그'라고 칭하지만 이들 내에서도 특허권을 놓고는 치열한 공방이 오간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와 블루홀은 영업기밀 유출을 놓고 국제소송까지 벌인바 있다. 반대로 2013년 송병준 당시 게임빌 대표와 박지영 당시 컴투스 대표는 피처폰 시절부터 내려온 오랜 라이벌 관계를 청산하고 생존을 위해 합병을 택하기도 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의장은 '크로스파이어'란 FPS 하나로 개인재산 61억달러(한화 약 7조원)을 기록하며 국내 부호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며 "제대로 된 IP 하나만 있어도 수조원은 우습게 버는 게 현재 게임산업의 현실이다보니 이런 개발사를 찾기 위한 게임사들의 M&A 전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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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0월 11일 07:00 게재]
조단위 M&A 플레이어로 게임사 부상
IP·인력 확보 전쟁 진행중
M&A 자금 모으러 IPO까지 활발
M&A 성과 경영진의 능력 가늠자 될 듯
IP·인력 확보 전쟁 진행중
M&A 자금 모으러 IPO까지 활발
M&A 성과 경영진의 능력 가늠자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