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구조는 현대重과 다 짜고…삼성重엔 의향 한번 묻겠다는 산업은행
입력 19.02.01 07:00|수정 19.02.07 09:18
현대重과 약 6개월간 협의 후 거래 조건 선확정
삼성重에는 추후 의사확인 절차 진행 예정
“현대重 인수 사실상 정하고 삼성重은 들러리” 비판
  •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절차 개시 발표에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그룹과 장기간 대우조선해양 매각 구조를 협의했고 거래 조건을 확정지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을 인수자로 낙점한 셈이다.

    이를 의식한 듯 산업은행은 뒤늦게 삼성중공업에도 의사 확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애초에 삼성중공업이 참여할 여지가 없게 만들어진 조건이라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은 현재의 빅3 체제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조선업 빅2 체제 전제 시 ‘민간 주인찾기’ 상대방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으로 한정돼 양사만을 대상으로 이 딜(Deal)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양사를 언급했지만 딜 구조는 사실상 현대중공업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합의한 방안에 따르면 조선 통합법인을 출범시켜 양 조선사를 자회사로 편제, 수평구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산업은행은 “절차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 삼성중공업 측에도 접촉해 인수의사 확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삼성중공업 측에서 거래 제안을 할 경우 평가절차에 따라 인수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합병(M&A) 추진 정보가 유출돼 주가가 변동하면 이 같은 방식의 딜 성사 가능성이 크게 악화되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과의 가격을 포함한 거래 조건 확정 후 삼성중공업의 의사를 추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삼성중공업 측은 "산업은행으로부터 오늘 오후 투자제안서를 받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에 다음과 같은 투자제안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1. 삼성중공업은 산업은행-현대중공업의 기본합의서 구조를 받아들일까

  • 기본합의서에 따르면 조선 통합법인은 기존 현대중공업이 조선 관련 사업 전부를 물적분할해 완전자회사를 신규 설립한다. 분할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이 중간지주회사가 돼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삼게 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 통합법인의 1대주주, 산업은행은 2대주주가 된다.

    이대로라면 삼성중공업도 중간지주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선업이 본업인 현대중공업그룹과 삼성전자가 메인인 삼성그룹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비주력 계열사로 분류되는 삼성중공업이 중간지주사를 만들 이유가 하등도 없다.

    또 현 구조로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된다면 또 다른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특성에 짜맞추듯 만들어진 거래 구조라 사실상 삼성중공업이 이 딜에 참여할 여지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2. 기본합의서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까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해 현대중공업과 6개월가량 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시간이 걸린 만큼 양사간 이견이 있었던 부분도 어느 정도 해소됐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그동안 사장이 나서 "대우조선해양 인수 계획은 없다"고 밝히는 등 대우조선해양과 거리를 뒀다. 그리고 산업은행이 기본합의서를 발표한 당일인 31일, 그것도 오후에서야 딜과 관련한 투자제안서를 받았다. 삼성중공업은 한 달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산업은행은 이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합의를 마치고, 삼성중공업에 이제서야 인수의향은 물어보겠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을 먼저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산업은행은 “구주 매각으로 누가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느냐는 단순하고 투명한 방식, 제3자를 포함시켜 공개 경쟁입찰을 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잠재적 인수 의사가 있을, 혹은 산업은행이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 누구일까 검토를 한 결과 기업가치 제고와 정상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현대중공업과 우선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딜은 단순히 기업을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고 많은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라며 “현대중공업과 먼저 협상을 했다고 어떤 특혜를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딜이 진행될수록 산업은행은 공정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빅2 체제를 전제로 조선산업 재편을 내걸었지만 1강1약이 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면서 현대중공업을 위한 빅딜(Big Deal)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조선업 생태계는 물론 글로벌 조선시장에서의 독과점 문제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 지도 지켜봐야 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짬짜미를 한 딜에 삼성중공업이 공정성이라는 단어를 위해 들러리를 서게 된 꼴"이라며 "산업은행의 발표는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