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현대중 합병, WTO 독과점 심사로 무산될수도?
입력 19.02.13 11:35|수정 19.02.14 09:20
하나금융투자 '현대와의 합병,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거래 명분인 '수주경쟁 저하'가 곧바로 WTO규정 위반사항
선박별 양사 점유율 50% 넘어 선주ㆍ경쟁국 반발 심할것
현대중공업은 손해 안보지만 조선업 발전 저해할 거래
  •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WTO(세계무역기구)와 EU 독과점 심사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주요 선박별 세계 점유율이 50%를 넘기면서 규제 당국의 문제제기는 물론, 선주들의 반발과 일본, 중국 및 유럽과의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

    이번 거래는 현대중공업에게는 '인수를 못해도 잃을 것 없는 거래'지만 국내 조선업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13일 하나금융투자 박무현 애널리스트는 '현대와의 합병, 넘어야 할 산이 많다'라는 리포트를 통해 이 같이 분석했다.

    ◆산은ㆍ현중이 합병 '명분'으로 내세운 '수주경쟁 완화'… WTO 규정 정면 위배 사항

    우선 리포트는 양사합병으로 인한 점유율이 "WTO와 EU위원회에서 독과점 심사를 넘기 어려운 수치"라고 지적했다.

    선박별로는 LNG선의 양사 수주잔고 합계 점유율이 59.5%, 인도량(수주잔고 포함) 점유율이 56.1%에 달했다. VL탱커는 수주잔량 기준 60.2%, 인도량 기준 51.1%로, 역시 양사 합병이 성사될 경우 완전한 독점시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15000TEU급 컨테이너선 수주잔량은 43.5%, 인도량은 75.8%에 달하고 VLGC 합계 인도량도 전 세계 선박량의 54.6%에 달한다.

    리포트는 "VL탱커와 LNG선 분야에서 50%가 넘어가는 합계 점유율은 독과점 문제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며"합병을 위해 점유율을 낮추는 것도 현실성이 없고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리포트는 특히 이번 인수합병에서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내세운 '명분'이 곧바로 WTO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평가했다.

  • 산은과 현대중공업은 이번 거래가 '저가수주 경쟁 완화'와 '선가회복 노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리포트는 "WTO에서는 기업간에 가격을 높이고 설비를 줄이는 것을 두고 담합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합병과 담함을 반경쟁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리 말해 대우조선-현대중공업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내역들이 곧바로 WTO 제소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리포트는 "현대와 산은이 언급하고 있는 수주경쟁 완화와 선가회복 노력은 WTO가 제시하고 있는 '강력한 담합'(Hardcore cartel)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선주들의 반발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리포트는 "선주들의 시각에서 이번 합병은 가격을 높이기 위한 명백한 담합행위로 비춰질 것"이라며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독과점 위반 요소이므로 선주들은 묵과하지 않고 국제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적극적인 실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또 "메이저 선주사들은 유럽와 중동 북미지역에 흩어져 있고 이들을 한데 모아 합병 승인을 이끌어는 어렵다"며 "특히 중동국가들은 탱커시장의 메이저 화주이자 선주사들"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리포트는 "지난 20년간 일본, 중국, 유럽이 한국 조선산업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WTO제소를 적극 활용해왔으며 이번에도 일본과 중국 조선업계가 독과점을 이유로 한국조선업에 대한 WTO제소 공세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리포트는 최근 EU위원회에서 지멘스-알스톰 철도사업부간 합병이 무산된 점과 지난 1월 이탈리아 크루즈 조선소 핀칸티에리와 STX프랑스간 합병에 독일과 프랑스가 독과점 조사 탄원서를 넣은 점을 예로 들었다. 이를 감안할 때 대우조선-현대중공업 양사 점유율이 독과점 심사 판단 기준이 될 것이고 이의 합병을 경쟁국가들이 지켜만 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 심사와 관련해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에서 결정하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합병 시너지 낮고 조선업 발전 기여 못하는 거래…현중은 실패해도 잃을 것 없어

    이번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국내 조선업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게 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리포트는 "양사의 합병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으며 한국조선업 발전에도 기여하는 바 크지 않아 보인다"며 "해양 산업에서의 실패를 선박분야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리포트는 "합병이 추진되면 대우조선해양은 핵심인력의 이탈 가능성이 크고 현대군산조선소와 같은 하청기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울산과 거제라는 지리적 차이로 설비감축도 현실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임에도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의 선박영업을 차단할 수 있으면서 미인도 드릴쉽 6척의 현금 2.7조원 때문이다"며 "(현대중공업으로선) 인수를 못하더라도 잃을 것은 없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거래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국내 조선업 발전에 끼치게 될 피해도 지적됐다.

    리포트는 "한국의 (조선업) 생산설비 감축이 오히려 중국 조선업에게 회생의 기회가 된다"며 "일본의 1980년대초 조선합리화정책으로 정리된 수많은 설계 기술인력들이 한국으로 오면서 현대중공업이 세계1위 조선사가 됐고 한국 조선업이 발전했다"며 "이런 실패사례를 감안하면 한국 조선업이 설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리포트는 "합병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이지만 문제는 단기적으로 대우조선의 영업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된다'며 "갑작스레 피인수 기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단기적인 영업활동과 중장기적 사업전략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리포트는 "거의 대부분의 해외 중공업 기업들 지배구조는 여러 은행과 PEF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며 "대우조선의 지배구조를 무리하게 오너 그룹 아래 두려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우수한 엔지니어링 능력을 적극 활용할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