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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별도 경쟁입찰 없이 매각하기로 했다. 논란이 적지 않지만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영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는 미시적인 것이고 소소한 것이라고 치부한 뒤 '국가경제' 를 위해 참아달라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99년부터 정부가 주도한 '빅딜'(Big Deal)을 연상하게 한다. 과잉중복투자를 조정해야 한다며 재벌 총수들을 호텔 식당으로 불러 "LG의 반도체는 현대가 받고, 삼성은 자동차를 넘기고..."를 지도하는 식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내세우는 명분은 유사하다.
◆국책은행 혼자서 국가 경쟁력 산업 결정 좌지우지?
당시는 '국가부도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가 직접 나서 상황을 진두지휘했고 책임까지 지려했다. 부총리와 장관들이 빅딜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설파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차원에서 거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책은행 한 곳이 나서서 전부 일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ㆍ산업통산자원부ㆍ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의 목소리는 일절 없다. 매각 방안이 발표되는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어 장관들이 산은에서 보고를 받은 것이 전부다.
문제는 그 흔한 입찰 한 번 없이 '시가'에 회사 경영권을 특정업체에 넘기면서 비롯되고 있다. 경쟁 입찰을 의무화한 현행법(국가계약법) 위반 소지가 있다.
그간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며 산은이 투입한 자금만 12조원이 넘는다. 반면 이번에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1대 주주가 되면서 지는 부담은 1조원도 되지 않는다. 삼성중공업 등 다른 경쟁후보는 애당초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라오도록 초청받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이에 산은은 "대우조선 경영권 매각이 아니라 현대중공업에 대한 투자다"라는 해명으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 거래는 경영권 매각과 관련한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대우조선 처리는 2008년 매각 실패 이후 10년이나 해결 못한 난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에 쫓기듯 단 몇개월만에 처리되고 있다.
사실 '절차적 정당성'이 희생될 이유도 없었다.
10년이나 손을 대지 못햇던 문제를 단 몇개월만에 "현대중공업에 주겠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번에 삼성중공업도 미리 불러서 "굳이 구주 매각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이디어를 내봐라"라고 기회를 줬어도 됐다. 조선산업 경쟁력을 정말 진지하게 염두에 뒀다면 이 정도 '수고로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절차가 모두 생략된 후, 현대중공업과 세부 자금조달 방안까지 모두 방안을 다 짜놓고서 그제서야 "이 방안을 받겠느냐"라고 삼성중공업에 물었다.
삼성중공업 입장도 애매할 수 밖에 없다. 그룹에서 '서자' 취급을 당해 온 회사다. 그룹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지금 정부를 대신해 산업은행이 조선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웬만큼 간이 큰 CEO가 아니면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감히' 산은의 행보를 방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 반응은 조용하다. 다른 산업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무수한 입장과 코멘트를 쏟아 냈던 과거와 전혀 다르다.
2년 전 산은이 금호타이어를 매각할 때는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우려'를 표명하며 거래 자체에 제동을 걸었다. '호남 민심'관리 차원이란 해석이 많았다. 한진그룹 등 오너일가 도덕성이 문제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개입을 언급했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24조원대 예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 PK지역 신공항 추진에 대한 언급과 논란도 줄짓고 있다.
반면 '조선업 세계 1위'의 명운이 달린 거래를 두고서는 '옳다, 그르다'는 입장 표명은 차치하고 아예 일절 코멘트도 없다. 오로지 정부기관도 아닌 국책은행장이 연일 '대승적 결단'을 강조하는 수준이다.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가 철처히 내부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거래에서는 정치권이나 정부의 어떤 가이드도 없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런 입장을 문서화해서 제공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때 '한진해운' 죽이고 '현대상선' 살린 사례와 비교되기도
이번 거래가 불러일으킬 파장도 언급된다. '인위적인 사업자 줄이기'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 특히 특정업체를 파산시킨 후 지금 악몽을 겪고 있는 '해운업 구조조정'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지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해운업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를 놓고 관계부처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행보가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 마지막에는 산업은행이 총대를 멨다.
당시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우위에 있었다. 규모 면에서 한진이 세계 8위, 현대가 15위였다. 컨테이너 선사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덩치가 클수록 경쟁력이 있다.
재무 여건도 한진해운 사정이 나았다. 한진해운이 영업흑자를 내고 있었지만 현대상선은 5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1조7000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은 한진해운의 경우 2013년 1445%에서 2015년 817%로 낮춘 반면, 현대상선은 같은 기간 1397%에서 1565%로 올라갔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인수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산은은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남겨 살렸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원은 파산시켰다.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을 두고 회사와 채권은행단 간의 3000억원 이견 차에서 빚어졌다.
이후 한국 해운업은 지금 처참한 상황이다.
글로벌 선사들이 몸집을 불리면서 중하위권 선사들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썼고 덩치가 작아진 한국 해운사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 처리 후 4차례에 걸쳐 2조원 가까이 지원했지만 현대상선은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조원의 추가 자금 지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3000억원 아끼려다 해운업 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국민 세금은 밑 빠진 독에 계속 들어가게 됐다. 여기서 산업 논리도, 금융 논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번 대우조선 매각에 대한 불안감도 비슷하다.
산은은 '현대·대우'통합법인과 '삼성중공업'의 빅2 체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1강1중 혹은 1강1약 체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질적인 '저가수주 경쟁'이 문제라고 해서 '경쟁'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만약 현대ㆍ대우 통합법인 출범 이후 조선업 경쟁력이 오히려 저하된다면. 이때부터는 '해운업에 이어 조선업에 대한 오판'까지 고스란히 산은이 비난을 받는다. 산업을 살리겠다며 법 위반논란까지 있는 상황을 야기하며 거래를 강행했는데 결과가 악화되면 '특혜시비'의 책임까지 산은이 같이 쓰게 된다.
거래가 불발되어도 문제다.
성사 되지도 못할 거래를 특혜논란까지 감내하며 추진했으나 또다시 민영화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해도 현대중공업은 사실 잃을 것이 없다. 경쟁사인 대우조선이 망가지기만해도 메리트가 있어서다. 이번에도 모든 책임은 또다시 산은으로 돌아온다.
반면 정치권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
총선을 앞두고 조선사들이 위치한 부울경 지역은 여러 정치 이슈로 민심관리가 필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어떤 식으로든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해결못한 대우조선 문제가 사실 이번 정부에서 뚝딱 해결된다면 내세울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정말 조선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지느냐는 수년 뒤 문제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산은이 이를 따져 보지 못했을 정도로 아마추어는 아니다" 고 논평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거래'가 이동걸 회장의 결단만으로 이뤄졌느냐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2월 19일 07:00 게재]
산은, 현대重 특혜 비판에도 매각
'경쟁력' 내세우면서 정부는 뒷짐
말 많던 정치권도 일절 언급 없어
박근혜 정부 때 해운업 실패 떠올라
업황 실패 땐 비난의 화살은 산은에
'경쟁력' 내세우면서 정부는 뒷짐
말 많던 정치권도 일절 언급 없어
박근혜 정부 때 해운업 실패 떠올라
업황 실패 땐 비난의 화살은 산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