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 FI 풋백옵션' 두고 시각차…경영권 제약 vs. 자금조달 미끼
입력 19.03.27 07:00|수정 19.03.29 09:59
'임원 선임' 등 주요 조항에 대한 시장 의견 엇갈려
경영권 침해 우려 속 추가 자금조달 기대감 해석도
투자 리스크 분산 측면에선 불리한 계약 아닐 것
  • 신세계그룹이 온라인법인 에스에스지닷컴(이하 SSG닷컴)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에 풋백옵션(Default Put Option; 위약매수청구권)을 부여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 의견이 나뉘고 있다. FI들이 보유하게 되는 풋백옵션의 조건이 향후 신세계그룹의 경영 활동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오히려 FI의 추가 자금투입을 위한 '미끼'로 신세계그룹이 활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어피너티(Affinity), 비알브이(BRV) 등의 FI들과 신주인수계약을 맺었으며, 오는 27일까지 SSG닷컴에 70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이에 SSG닷컴의 최대주주인 이마트는 FI를 대상으로 70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주당75만9595원)를 단행했다. FI들은 투자 대가로 SSG닷컴 신주 92만1544주(어피너티 46만772주, BRV 46만772주)를 받게 된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SSG닷컴의 주주구성은 기존 이마트 65.1%, 신세계 34.9%에서 이마트 50.1%, 신세계 26.8%, FI 23.1%로 변경된다. FI들은 이번 7000억원 출자 후 2022년까지 3000억원을 추가로 출자할 예정이다. 1조원의 투자 유치가 마무리되면 SSG닷컴의 지분율 구성은 이마트 50%, 신세계 25%, FI 25% 수준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그룹은 공시를 통해 FI에 풋백옵션을 부여한 이유를 밝혔다. FI의 경영 참여와 지분권 보호를 위해 보장한 권리에 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 다만 시장에서는 주요 계약조건에 대해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1조원을 유치하기 위해 신세계그룹이 불리한 조건들을 수용하는 등 FI와의 '신경전'에서 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FI들이 신세계ㆍ이마트에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다음과 같다. 즉 SSG닷컴의 대주주인 신세계와 이마트가 ▲FI의 임원 선임 의무 위반 ▲SSG닷컴의 자본구조나 조직구조를 (FI와 상의없이) 일방적인 변경 ▲SSG닷컴 주식 처분 제한 위반 ▲경업금지 의무의 중대한 위반 등이다. 열거된 조항 위반 시 FI들은 서면으로 통지하고 3개월내에 신세계와 이마트가 시정하지 않은 경우. FI들은 경우 유상증자를 통해 부여받은 주식 전부를 신세계그룹에 매도할 수 있다. 이때 이마트와 신세계는 각각 보유한 온라인법인 지분율에 따라 매수해야 한다. 적용되는 금리는 연복리 25%다.

    이번 풋백옵션이 신세계그룹에 불리하다고 보는 쪽 시각은 '법인 경영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임원 선임을 포함해 나열된 조항들이 신세계그룹의 향후 온라인법인 사업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약조건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SSG닷컴의 자본구조뿐만 아니라 조직구조도 쉽게 바꿀 수 없으며, 보유한 온라인법인 주식 처분 역시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FI 측 임원을 선임해야 하는 의무 등을 고려하면 신세계그룹이 온라인사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기 힘들어질 수는 있다"며 "연복리 25%의 이율에 따라 계산하기 때문에 위약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향후 신세계그룹이 주주간 계약을 위반할 시 재무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세계그룹에게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우선 신세계그룹이 해당 조건을 어길 가능성이 낮고, 오히려 풋백옵션 조항을 미끼로 FI와의 쌍방 합의를 유도해 추가 자금조달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FI의 경영 참여가 당장에는 '경영주도권 훼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앞으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한 온라인사업의 자금조달 협상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단 해석이다.

    시장에서는 그간 신세계그룹이 온라인법인에 유치한 1조원의 투자금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투자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제기돼왔다. 온라인 물류센터 1개를 건립하는 데 드는 비용만 3000억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1조원으로 온라인법인 시설투자 등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이란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FI가 돈만 빌려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만큼 사업에 관여하면 출자가 약속된 1조원(2019년 7000억원+2020년까지 3000억원 추가) 외에 추가 자금조달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SSG닷컴 풋백옵션의 수용이 정용진 회장의 '큰 그림'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 같은 구도가 이어지려면 신세계ㆍ이마트와 FI들간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이어지는 한편, SSG닷컴이 FI들과 FI들에 투자한 해외 기관투자가(LP)들을 설득할 정도로 성장성을 보여야 한다는 조건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PEF들이 기존 투자업체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이를 가능하게 하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과 FI 사이의 풋백옵션 주요 조항들이 '잘 하겠다', '마음대로 안 하겠다' 정도의 그룹 의지와 상징성은 담고 있지만 거창한 함의가 담겼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SSG닷컴 출범을 순부채로 시작한 데다 신세계그룹 자체적으로 투자 여력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FI와의 관계는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신세계그룹이 이 정도 규모의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은 처음이다보니 'FI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어피너티를 포함한 상당수 PEF들이 대기업과 공동투자 후 풋옵션으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빈번한데다,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신세계그룹이 국내를 대표하는 유통그룹이지만 해외 FI와 공동경영과 투자를 매끄럽게 처리할지는 미지수. 실제로 이번 투자협상도 당초 3월27일 계약체결이 예정돼 있었지만 양측간 협상이 길어지고 몇몇 협의사항으로 인해 연기되고 있다는 언급도 나오고 있다.